이 글은 Claude Opus 4.8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1부에서는 요즘 축구가 왜 다 똑같아 보이는지를, 2부에서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색깔들을 되짚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진행 중인 2026 월드컵을, 옛날 팬의 눈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기는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미리 한 가지 짚자면, 이 대회는 옛날 팬에게 유난히 친절합니다. 이유는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1. 플레어는 죽지 않았다, 더 어려졌을 뿐#

2006년쯤 축구를 떠난 분들은 “호나우지뉴와 함께 발재간도 끝났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화려함은 사라진 게 아니라 더 어리고 빨라졌습니다.

  • 라민 야말(Lamine Yamal, 18세, 스페인). 유로 2024에서 만 16세에 프랑스를 상대로 박스 밖에서 감아 넣은 골로 대회 베스트골에 뽑혔습니다. 10대 소년이 메이저 무대를 휘젓는 모습은, 우리가 어린 마이클 오언이나 웨인 루니에게서 마지막으로 봤던 그 장면입니다.
  • 데지레 두에(Désiré Doué, 19세, 프랑스). 2025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PSG가 인테르를 5~0으로 꺾을 때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CL 결승 단일 경기 3개 공격 포인트라는 역대 최초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 비니시우스 주니오르(Vinícius Júnior, 레알 마드리드/브라질). 빠른 발과 방향 전환으로 수비 둘을 한꺼번에 끌고 다니는, 현대판 1대1 악몽입니다.

물론 2부에서 인용한 게리 네빌의 “로봇 같다"는 비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개성이 깎여나간 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람을 의자에서 벌떡 일으키는 선수들은 매 대회 새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보너스: 당신이 떠난 사이 새로 생긴 “예술”#

흥미로운 건, 옛날엔 없던 새로운 영역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바로 세트피스 전담 코치 입니다. 2021/22 시즌만 해도 프리미어리그에 세트피스 전담 코치를 둔 팀은 셋뿐이었는데, 지금은 열 개가 넘습니다. 아스널은 니콜라스 조버 코치 부임 후 세트피스를 팀의 정체성으로 만들었습니다.

압권은 리버풀의 “스로인 코치” 토마스 그뢰네마르크입니다. 클롭이 직접 전화를 걸어 영입한 이 코치는, 압박받는 상황에서의 스로인 성공률을 한 시즌 만에 45.4%에서 68.4%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스로인만 가르치는 코치가 있는 시대입니다. “내가 안 보는 사이에 별게 다 생겼네” 싶은 재미, 이것도 다시 보는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2. 월드컵에는 클럽 축구가 잃어버린 혼돈이 있다#

이게 “왜 하필 월드컵인가"에 대한 가장 단단한 답입니다.

1부에서 말했듯 클럽 축구는 동질화됐습니다. 하지만 국가대표 축구는 그 흐름에 저항합니다. 이유는 단순하고 구조적입니다. 시간 입니다. 클럽 감독은 매일 선수를 훈련시키고, 마음에 안 들면 선수를 사 옵니다. 반면 국가대표 감독에게 주어진 건 대회 직전 며칠뿐이고, 선수는 자기 나라에서 자란 사람들로 고정돼 있습니다. 정교한 시스템을 심을 시간이 없으니, 즉흥성과 나라별 기질이 살아남습니다.

FIFA의 기술 연구 그룹도 2018 월드컵을 두고 “다양한 플레이 스타일"을 칭찬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수들은 자기 나라에서 자랐기 때문에 특정한 멘털리티를 갖는다. 그래서 여전히 다양한 스타일을 볼 수 있다.”

순수한 경기의 질로만 따지면 이제 챔피언스리그가 국가대표 축구를 앞섰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월드컵이 지키고 있는 건 질이 아니라 드라마와 낭만 입니다. 매끈함을 내주고 혼돈을 챙긴 셈인데, 우리가 그리워하던 게 바로 그 혼돈 아니었습니까.


3. 48개국, 더 많은 약체 = 더 많은 이변#

2026 월드컵은 32개국에서 48개국 으로 확대됐습니다. 1998년 이후 첫 확대입니다. 구조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4개 팀씩 12개 조 (예전엔 8개 조).
  • 104경기 (예전 64경기에서 40경기 증가).
  • 각 조 상위 2팀 + 각 조 3위 중 성적 좋은 8팀 = 32팀이 16강 토너먼트(정확히는 새로 생긴 32강)에 진출.
  • 우승하려면 8경기 를 치러야 합니다(예전엔 7경기).

확대에 대한 비판은 분명히 있습니다. “약체가 너무 많아 경기 질이 떨어진다”, “3위로도 통과하니 절박함이 줄어든다” 같은 지적입니다. 아르센 벵거 같은 이는 “48개국이 적정 규모"라며 옹호하지만, 논쟁은 진행형입니다.

그런데 옛날 팬에게는 이 “약체 증가"가 오히려 선물입니다. 이변과 낭만의 총량이 늘어나기 때문 입니다. 이번 대회에는 사상 처음 본선에 오른 나라가 넷이나 됩니다.

  • 퀴라소 — 인구 약 15만 6천 명. 월드컵 본선에 오른 역대 최소 인구 국가입니다.
  • 카보베르데(Cape Verde) — 인구 약 52만 명. 카메룬을 꺾고 올라왔습니다.
  • 우즈베키스탄 — 중앙아시아 최초의 본선 진출국.
  • 요르단 — 사상 첫 월드컵.

생각해 보십시오. 2002년 개막전에서 세네갈이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1~0으로 꺾었을 때, 2022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일본이 독일과 스페인을 잇따라 잡았을 때의 그 짜릿함. 약체가 많아진다는 건 그런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토너먼트 축구의 낭만은 강팀의 우승이 아니라,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단 한 경기에 있으니까요.


4. 2026년의 이야깃거리들#

옛날 팬의 마음을 흔들 만한 스토리가 이번 대회에 가득합니다.

두 거장의 라스트 댄스. 리오넬 메시(38세, 아르헨티나)는 통산 6번째이자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에서 디펜딩 챔피언으로 타이틀 방어에 나섭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41세, 포르투갈) 역시 6번째 월드컵에서, 끝내 품지 못한 우승컵에 마지막으로 도전합니다. 우리가 20여 년간 지켜본 두 시대의 동시 퇴장입니다.

감독석의 추억 소환. 카를로 안첼로티가 브라질 사상 최초의 외국인 정식 감독으로 노란 군단을 이끕니다. 1998년 선수, 2018년 감독으로 우승한 디디에 데샹은 이번을 끝으로 프랑스를 떠납니다. 잉글랜드는 독일인 토마스 투헬이 지휘합니다. 라이벌 구도 자체가 이야깃거리입니다.

돌아온 이름들. 노르웨이가 1998년 이후 28년 만에 본선에 복귀했습니다. 엘링 홀란드가 예선에서 16골을 몰아넣으며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습니다. 41세 베테랑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도 마지막 대회를 위해 은퇴를 번복하고 독일 골문에 섰습니다.

그리고 빈자리. 4회 우승국 이탈리아가 또다시 본선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바조와 말디니의 나라가 세 대회 연속 월드컵에 없다는 사실은, 2부에서 이야기한 “세리에 A 황금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묘하게 쓸쓸한 대목입니다.


5. “똑똑하게 보는 법"을 조금만 익히면 된다#

요즘 축구가 지루해 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옛날 보던 방식"으로 보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공만 쫓아가면 압박과 점유는 그냥 “다 같이 우르르 뛰는 것"으로만 보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개념만 알면, 지루한 패스 돌리기가 정교한 체스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 압박 트리거(pressing trigger). 팀이 떼로 압박을 시작하는 “신호"입니다. 상대의 백패스, 어설픈 터치, 풀백에게 가는 패스, 느리게 뜨는 공 등이 방아쇠가 됩니다. 압박은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신호에 맞춰 발동된다는 걸 알고 보면, 그 순간의 긴장감이 보입니다.
  • 하프 스페이스(half-space). 중앙과 측면 사이의 채널입니다. 현대 공격이 가장 노리는 알짜 공간이라, 이 구역에서 누가 공을 잡는지를 보면 공격의 의도가 읽힙니다.
  • 인버티드 풀백(inverted full-back). 측면 수비수가 중앙 미드필더 자리로 들어오는 현대의 기현상. 처음 보면 “쟤 왜 저기 있어?” 싶지만, 알고 보면 빌드업과 역습 차단을 위한 정교한 장치입니다.

가장 쉬운 실전 팁 은 이겁니다. 공을 그만 쳐다보고, 맨 앞 라인과 맨 뒷 라인의 인원수를 세어 보십시오. 그 사이를 누가, 어떻게 오가는지를 보면 경기의 구조가 드러납니다.

개념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는 자료도 많습니다. 입문용으로는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설명하는 Tifo Football(유튜브)이 최고이고, 한 번에 한 개념씩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The Coaches’ Voice, 그리고 2부에서 인용한 마이클 콕스가 참여하는 The Athletic FC Tactics Podcast 가 좋습니다.


6. 그래서, 한국에서 어떻게 보나#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시청 시간. 이번 대회는 미국·캐나다·멕시코 공동 개최라 경기 대부분이 한국 새벽~오전에 열립니다. 한국 저녁 시간대 경기는 사실상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희소식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 경기는 멕시코 개최 도시에서 저녁에 열려, 한국 시간 기준 오전 10~11시 무렵의 비교적 편한 시간대에 볼 수 있습니다.

중계. 이번엔 사정이 좀 특이합니다. JTBC가 주관 방송사로 104경기 전부를 중계하고, KBS가 일부 경기(대표팀 경기, 결승 등)를 재판매받아 무료로 내보냅니다. 스트리밍은 네이버 스포츠 / CHZZK 등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지상파 3사가 나란히 중계하던 예전과는 풍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 대표팀. 한국은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체코와 함께 A조에 속했습니다. 홍명보 감독, 손흥민 주장 체제로 1차전 체코를 2~1로 꺾으며 좋은 출발을 했습니다. 남은 경기는 멕시코, 남아공전입니다.


마치며: 결국, 같이 보는 맛#

3부에 걸쳐 길게 이야기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요즘 축구가 다 비슷해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닙니다(1부). 그 시절 나라·리그·선수마다 또렷한 색깔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2부). 하지만 그 색깔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무대가 월드컵이고, 약체가 늘어난 이번 대회는 이변과 낭만의 총량이 오히려 커졌습니다(3부). 플레어는 더 어려졌을 뿐 죽지 않았고, 똑똑하게 보는 법을 조금만 익히면 지루한 패스 돌리기도 체스가 됩니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가 그 시절 축구를 사랑했던 진짜 이유는 전술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새벽에 친구들과 모여, 혹은 아버지 옆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함께 봤던 그 시간이 좋았던 겁니다. 이번엔 그 옆자리에 아이를 앉혀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30년 뒤, 그 아이도 “그땐 야말이라는 선수가 있었지"라며 장밋빛 회상에 젖을지 모를 일입니다.

새벽잠, 조금 포기할 가치가 있습니다. 즐거운 월드컵 되시길 바랍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