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월드컵을 200% 즐기는 법 (1): 왜 요즘 축구는 다 똑같아 보일까
이 글은 Claude Opus 4.8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오랜만에 새벽에 일어나 월드컵 중계를 켰는데, 묘한 기분이 드신 적 없으십니까. 분명히 처음 보는 두 팀인데, 어쩐지 같은 팀이 청백 유니폼만 바꿔 입고 뛰는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2026 월드컵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6월 11일 멕시코시티 에스타디오 아스테카에서 개막했고, 대한민국은 첫 경기에서 체코를 2~1로 잡으며 산뜻하게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계를 보다가 “어, 내가 보던 그 축구가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갸웃하신 분이 적지 않을 겁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해외축구를 열심히 보다가 어느 순간 손을 놓으신 40대 분들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글은 바로 그런 분들, “요즘 축구는 옛날만큼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분들을 위한 3부작 안내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느낌은 절반은 진짜고 절반은 착각입니다.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할 줄 알게 되면, 2026 월드컵이 다시 재미있어집니다.
1부에서는 먼저 “왜 다 똑같아 보이는가"를 진단해 보겠습니다.
모든 팀이 같은 “정답지"를 들고 있다#
20년 전 축구를 떠올려 봅시다. 이탈리아 팀은 일단 안 먹히는 게 목표였고, 영국 팀은 일단 길게 차고 달렸으며, 브라질은 일단 발재간으로 상대를 농락했습니다. 팀을 몰라도 5분만 보면 “아 얘네는 이런 스타일이구나” 하는 감이 왔습니다.
지금은 그 감이 잘 안 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거의 모든 팀이 같은 정답지를 들고 경기에 나오기 때문 입니다. 그 정답지의 핵심 과목은 세 개입니다.
- 압박(pressing): 공을 빼앗기면 그 자리에서 즉시, 떼로 몰려가 되찾는다.
- 점유(possession): 후방에서부터 짧은 패스로 차근차근 공을 돌리며 빌드업한다.
- 활동량(work rate): 90분 내내 쉬지 않고 뛰며 공간을 압축한다.
이 세 과목을 잘 푸는 팀이 이기고, 못 푸는 팀이 집니다. 그러니 모두가 같은 과목을 공부합니다. 그 결과가 바로 “다 똑같아 보이는” 현상입니다.
두 천재가 만든 하나의 교과서#
이 정답지는 크게 두 사람의 작품이 합쳐진 것입니다.
한 명은 펩 과르디올라(Pep Guardiola) 입니다. 요한 크루이프의 제자인 그는 “포지셔널 플레이(positional play, 스페인어로 juego de posición)“를 현대 축구의 정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라운드를 구역으로 나눠 선수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짧은 패스로 수적·위치적 우위를 만들어 상대를 질식시키는 방식입니다. 축구 역사가 조너선 윌슨(Jonathan Wilson)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시즌부터 펩 과르디올라의 축구는 지배적이었다. (…) 그의 철학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지 않은 엘리트 감독은 이제 한 명도 없다.”
다른 한 명은 위르겐 클롭(Jürgen Klopp) 입니다. 독일식 “게겐프레싱(gegenpressing)”, 즉 공을 잃은 직후 0.1초도 쉬지 않고 되빼앗는 즉각 압박의 전도사입니다. 클롭의 명언이 모든 걸 말해줍니다.
“세상의 어떤 플레이메이커도 좋은 게겐프레싱 상황만큼 훌륭할 수는 없다.”
펩의 점유와 클롭의 압박. 이 둘이 지난 십수 년 동안 하나로 녹아들어 “현대 축구의 표준 모델"이 되었습니다. 윌슨은 오늘날 감독 대부분이 “같은 스펙트럼 위 어딘가에 있다"고 표현했고, 『The Mixer』의 저자 마이클 콕스(Michael Cox)는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럽 전역의 스타일이 그 어느 때보다 덜 개성적이다. 올 시즌 유벤투스와 바르셀로나 경기를 봤는데, 그냥 같은 스타일의 두 버전 같았다. 90년대였다면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 하필 지금, 다 같아졌을까#
스타일이 수렴한 데는 분명한 구조적 이유가 있습니다. 감독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닙니다.
1. 데이터가 같은 정답을 배포한다#
20년 전엔 구단마다 “비법 노트"가 달랐습니다. 지금은 같은 데이터 회사가 같은 통계를 수십 개 구단에 동시에 팝니다. 리버풀은 2012년 프리미어리그 최초로 사내 분석팀을 꾸려 xG(기대득점) 같은 모델을 만들었지만, 이제 그런 무기는 모두가 비슷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데이터 분석가 테드 넛슨(Ted Knutson)의 말이 상징적입니다.
“예전 브렌트포드 동료들이 지금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울버햄튼에 있다. 누가 최고의 데이터를 가졌는지 소문이 다 났다.”
좋은 아이디어가 빠르게 복사되니, 격차가 줄고 스타일이 수렴합니다.
2. 스포츠 과학이 표준화됐다#
유럽 엘리트 클럽 99곳을 조사했더니 99%가 스포츠 과학 스태프를 두고 있었고, 97%가 GPS로 선수의 운동 부하를 측정해 훈련을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같은 과학으로 같은 방식으로 선수를 갈아 넣으니, 나오는 축구도 비슷해집니다.
실제로 숫자가 증명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6/07 시즌부터 2012/13 시즌 사이 프리미어리그의 고강도 달리기는 약 30%, 스프린트 횟수는 약 85% 늘었습니다. 최근 10년(2015/16~2024/25)에도 고강도 거리와 스프린트 거리는 또 한 번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한마디로 요즘 선수들은 옛날 선수들보다 훨씬 더 많이, 더 빨리 뜁니다.
3. 감독 교육이 같은 교재로 이뤄진다#
1998년 UEFA가 코칭 자격을 상호 인정하는 협약을 맺으면서, 감독들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고 같은 커리큘럼으로 교육받게 됐습니다. 같은 교재로 배운 사람들이 같은 축구를 가르치는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현장도 “지루하다"고 말한다#
이게 단지 옛날 팬들의 투정만은 아닙니다. 현역과 전문가들이 직접 불만을 토로합니다.
선이 굵은 잉글랜드 감독 샘 앨러다이스(Sam Allardyce)는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플레이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 다들 ‘반드시 이렇게 플레이해야 한다’고 세뇌당했다. 지루해질 것이다. 세계 최고의 리그라면 다양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2014 월드컵 우승 수비수 라파엘 바란(Raphaël Varane)은 은퇴 즈음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모든 게 로봇 같다. 정해진 패턴이 너무 많아 상대 블록을 흔들기가 어렵다. 자유가 훨씬 줄었고, 창의성도, 천재도 줄었다. 축구는 실수의 경기로 남아야 하는데, 이제 그렇지 못하다.”
해설가로 변신한 게리 네빌(Gary Neville)은 한 맨체스터 더비 0~0 무승부 후 더 직설적이었습니다.
“선수들이 1인치 단위로 마이크로 관리당한다. 너무 로봇 같다. 자기 위치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이 로봇 같은 성향이 축구의 병이 되어가고 있다.”
심지어 이 표준 모델의 창시자 격인 펩 과르디올라조차 “오늘날의 현대 축구는 더 이상 포지셔널하지 않다"며 자신이 만든 흐름이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고 말합니다. 정답지를 쓴 사람이 “이 정답지는 이제 옛날 거야"라고 하는 형국입니다.
숫자로도 “더 예측 가능해졌다”#
감(感)만이 아닙니다. 2021년 『Royal Society Open Science』에 실린 연구는 1993년부터 2019년까지 11개 리그 약 8만 8천 경기를 분석해 “축구가 점점 더 예측 가능해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독일 리그의 경우 경기 결과 예측 정확도가 2000년대 초반 60~65%에서 2010년대 후반 약 80%까지 올라갔습니다. 강팀이 약팀을 이변 없이 잡아내는 일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VAR까지 더해지면서 “맛이 떨어졌다"는 정서는 더 강해졌습니다. 영국 여론조사기관 YouGov 조사에서 프리미어리그 팬의 72%가 “VAR이 경기를 덜 즐겁게 만들었다"고 답했고, “더 재미있어졌다"는 응답은 9%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절반은 착각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면 “거봐, 내 말이 맞잖아” 하실 겁니다. 맞습니다. 절반은요. 하지만 정직하게 반대편 이야기도 해야 공정합니다.
첫째, 축구의 질은 오히려 올라갔습니다. 앞서 인용한 연구를 보면, 선수당 패스 횟수가 늘어난 동시에 패스 성공률도 76%에서 83%로 올랐습니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정확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둘째, 골이 줄지도 않았습니다. 프리미어리그 기준으로 2021/22부터 2024/25까지 네 시즌은 역대 최다 득점 시즌이었습니다. 점유 축구가 골을 죽였다는 통념과 달리, 골은 오히려 풍년이었습니다.
셋째, 우리 기억은 원래 거짓말을 합니다. 심리학에는 “장밋빛 회상(rosy retrospec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나쁜 기억은 빨리 바래고 좋은 기억은 오래 남아서, 과거가 실제보다 좋게 느껴지는 현상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황금기 축구"는 사실 우리가 가장 열심히 보던 시절의 축구, 즉 우리 청춘의 축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평생 가는 인생 음악이 대개 10대~20대에 듣던 노래인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넷째, 추는 이미 반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2025/26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세트피스 득점 비중이 크게 늘고, 박스 안으로 던지는 롱 스로인이 두 배 이상 늘었으며, 경기당 패스 수는 오히려 2012년 이후 최저로 떨어졌습니다. 모두가 점유에 수렴하자, 거기에 맞서는 “직선적인 축구"가 새로운 차별화 무기로 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1부를 마치며#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요즘 축구가 다 비슷해 보인다"는 건 착각이 아닙니다. 펩의 점유와 클롭의 압박이 합쳐진 표준 모델이, 데이터·스포츠 과학·표준화된 감독 교육을 타고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예측 가능성 통계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옛날이 무조건 더 재미있었다"는 건 절반쯤 우리 기억의 장난 입니다. 질은 올라갔고, 골은 줄지 않았으며, 추는 다시 다양성 쪽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짜 그리워하는 건 무엇일까요. 다음 2부에서는 잠시 추억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나라마다, 리그마다, 선수마다 색깔이 분명했던 그 시절 — 카테나치오와 토탈 풋볼, 등번호 10번과 리베로가 살아 있던 90~2000년대의 축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References#
- Coaches’ Voice, “Positional play explained” — https://learning.coachesvoice.com/cv/positional-play-football-tactics-explained-guardiola-cruyff-manchester-city/
- Jonathan Wilson (Guardian), “The age of Guardiola is waning” — https://sccgmanagement.com/sccg-news/2025/9/13/the-age-of-guardiola-is-waning-and-the-games-guru-is-baffled-by-what-comes-next-jonathan-wilson-2025/
- Sky Sports / Michael Cox, “Why Jürgen Klopp’s gegenpressing was revolutionary” — https://www.skysports.com/football/news/11661/11729575/why-jurgen-klopps-gegenpressing-with-dortmund-was-revolutionary
- The42, Michael Cox interview — https://www.the42.ie/michael-cox-5417497-Apr2021/
- Goal.com, “Brainwashed: Allardyce says Premier League is becoming boring” — https://www.goal.com/en/news/brainwashed-allardyce-premier-league-is-becoming-boring/1c0f93dtw9ttv178vv18jolftc
- AllFootball, Raphaël Varane interview (L’Équipe) — https://m.allfootballapp.com/news/EPL/
- AOL/BBC, “Gary Neville hits out at robotic modern football” — https://www.aol.com/news/gary-neville-hits-robotic-modern-075951320.html
- Opta Analyst, “Analysing Premier League playing styles 2024-25” — https://theanalyst.com/articles/analysing-premier-league-playing-styles-2024-25
- Royal Society Open Science, “Football is becoming more predictable” —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8672071/
- YouGov, “Premier League fans still say VAR is working badly” — https://yougov.com/en-gb/articles/54860-premier-league-fans-still-say-var-is-working-badly
- Wikipedia, “Rosy retrospection” — https://en.wikipedia.org/wiki/Rosy_retrospection
- Opta Analyst, “Premier League teams still more direct in 2025-26” — https://theanalyst.com/articles/premier-league-teams-still-more-direct-20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