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Claude Opus 4.8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1부에서는 요즘 축구가 왜 다 비슷해 보이는지를 따져봤습니다. 펩의 점유와 클롭의 압박이 하나로 합쳐진 표준 모델이 전 세계로 퍼졌고, 그 결과 팀마다의 개성이 옅어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짜 그리워하는 건 무엇일까요. 2부는 잠깐 추억 여행입니다. 다만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이 글은 객관적 분석이라기보다는, 그 시절을 함께 통과한 사람들끼리 나누는 “야, 그때 그 선수 기억나냐” 류의 대화에 가깝습니다. 1부에서 말씀드린 “장밋빛 회상"의 혐의를 스스로 인정하면서, 그래도 한 번쯤은 마음껏 추억에 젖어보자는 겁니다.


리그마다 국적(國籍)이 있었다#

이탈리아 세리에 A — 수비의 예술#

90년대 세리에 A는 그냥 “세계 최강 리그"였습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1990년에는 유럽 3대 대회(유러피언컵·컵위너스컵·UEFA컵)를 이탈리아 클럽이 싹쓸이했고, 1980년대 후반부터 세계 이적료 기록은 사실상 세리에 A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라치오와 인테르를 거친 아론 빈터르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지금의 스페인이 그때의 이탈리아였다. 세계 최고 선수들이 다 거기서 뛰었다.”

그리고 그 리그의 정체성은 수비 였습니다. 카펠로의 AC 밀란은 1991~93년 리그 58경기 무패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고, 1993/94 시즌엔 34경기 중 21경기 클린시트에 단 15실점이라는 비현실적인 수비를 선보였습니다. 그 중심엔 “우아한 리베로” 프랑코 바레시와, 그의 후계자가 된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가 있었습니다. 공격수를 두 명 막는 게 아니라, 골을 먹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던 시절입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 피지컬과 다이렉트#

같은 시기 잉글랜드는 정반대였습니다. 1990년대 초 거의 모든 팀이 4-4-2를 썼고, 점유나 공간 조작보다는 속도와 피지컬이 우선이었습니다. 수비가 공을 길게 차면 공격수가 달려가는 이른바 “kick and rush”. 1994/95 우승팀 블랙번은 시어러-서튼의 “SAS” 투톱이 상대 골문을 두들겨 부쉈고, 조지 그레이엄의 아스널은 “1-0 to the Arsenal"이라는 응원가가 상징하듯 지독한 수비 축구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이 거칠고 단순한 리그를 바꾼 사람이 1996년 부임한 아르센 벵거(Arsène Wenger)입니다. 잉글랜드 리그 우승을 차지한 첫 외국인 감독이었던 그가 식단 관리를 시도하자, 선수들이 “우리 초콜릿 바 내놔(We want our Mars bars!)“를 외쳤다는 일화는 당시 잉글랜드 축구 문화를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스페인 라리가 — 기술과 점유의 씨앗#

오늘날 우리가 아는 “티키타카"의 뿌리는 90년대 초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 “드림팀"입니다. 1992년 5월 웸블리에서 삼프도리아를 꺾고 클럽 첫 유럽 정상에 오른 그 팀에는 선수 시절의 펩 과르디올라가 있었습니다. 즉, 1부에서 말한 “현대 축구의 표준"은 바로 이 시절 라리가에서 씨앗이 뿌려진 셈입니다.

독일 분데스리가 — 리베로의 본고장#

독일은 리베로(libero), 즉 수비 뒤에서 경기를 조립하는 자유로운 스위퍼의 본고장이었습니다. 그 원형이 프란츠 베켄바워이고, 90년대엔 마티아스 자머(Matthias Sammer)가 그 전통을 이었습니다. 자머는 1996년, 리베로로서 발롱도르를 수상한 사실상 마지막 선수입니다. 이 포지션이 곧 멸종한다는 사실을, 당시엔 아무도 몰랐습니다.


나라마다 철학이 있었다#

리그뿐 아니라 국가대표팀도 저마다 분명한 철학을 들고 월드컵에 나왔습니다.

  • 브라질 — 조구 보니투(jogo bonito). 1982년 텔레 산타나의 브라질(소크라치스, 지쿠, 팔카웅)은 “월드컵을 못 든 가장 아름다운 팀"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1994년 둥가의 브라질은 실리적인 수비 조직으로 노선을 틀어 우승했습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아름다움이냐 승리냐"를 두고 철학이 충돌했던 겁니다.
  • 네덜란드 — 토탈 풋볼. 모든 필드 플레이어가 서로의 역할을 대신하는 혁명. 리뉘스 미헐스가 설계하고 크루이프가 구현했습니다. 크루이프의 격언 하나면 충분합니다. “횡패스를 하지 마라. 잘리면 한 번에 두 명이 뚫리니까.”
  • 이탈리아 — 카테나치오(catenaccio). “빗장"이라는 뜻 그대로, 깊고 촘촘한 수비 뒤에 리베로를 세우는 실리 축구. (다만 통념과 달리 1982년 우승팀은 로시·콘티를 앞세워 꽤 공격적이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 잉글랜드 — 롱볼 독트린. FA 코칭 디렉터 찰스 휴스는 “대부분의 골은 3패스 이내에 나온다"는 분석을 근거로 롱볼 전술을 정립했습니다. 훗날 “기술 이해가 부족한 세대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것 또한 분명한 하나의 색깔이었습니다.
  • 프랑스 — 1998~2000 황금세대. 지단, 비에라, 앙리, 데샹, 드사이로 1998 월드컵과 유로 2000을 연달아 제패했습니다. 드사이의 말처럼 “그 시절 우리가 세계 최강, 훗날의 스페인 같은 존재"였습니다.

5분만 봐도 어느 나라인지 알 수 있던 시절. 그게 그렇게 오래전이 아닙니다.


이제는 보기 힘든 포지션들#

가장 그리운 건 어쩌면 전술이 아니라 “그 자리에만 있던 선수들"일지 모릅니다.

등번호 10번 — 판타지스타#

가장 상징적인 멸종 위기종입니다. 천천히 걸어다니다가 한 번의 패스로 경기를 끝내버리던 클래식 10번, 즉 지네딘 지단, 후안 로만 리켈메, 프란체스코 토티, 루이 코스타, 로베르토 바조 같은 선수들입니다.

ESPN은 리켈메를 엔간체(enganche, 아르헨티나식 10번)의 “마지막 부류”, “그 포지션 역사상 가장 순수한 선수"로 규정하면서, 이 포지션을 “번식하기엔 너무 게으른, 멸종위기의 판다"에 비유했습니다. 멸종의 이유는 1부에서 이야기한 그대로입니다. 템포가 빨라지고 고강도 압박이 보편화되면서, 90분 내내 수비 가담 없이 “승객처럼” 공격만 기다릴 여유가 사라진 겁니다. 흥미롭게도 클래식 10번의 상징적 종언은 2006년으로 꼽힙니다. 데니스 베르캄프와 지단이 같은 해에 은퇴했기 때문입니다.

리베로 / 스위퍼#

앞서 말한 자머의 포지션입니다. 수비 라인 뒤에 한 명을 더 세우는 리베로는, 오프사이드 라인이 그만큼 깊어져 배후 침투에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오프사이드 규칙의 해석 변화와 스리 톱의 보편화가 맞물리면서, 리베로는 점차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대신 그 DNA는 “뒤에서 공을 배급하는 볼 플레잉 센터백"과 “스위퍼 키퍼"로 형태를 바꿔 살아남았습니다. 1992년 도입된 백패스 룰(골키퍼가 동료의 발 백패스를 손으로 잡지 못하게 한 규칙)이 키퍼에게도 발재간을 요구하게 된 것도 이 변화를 거들었습니다.

박스 안의 여우 — 순수 포처#

페널티 박스 안에서만 어슬렁거리다가 골만 넣던 “포처(poacher)“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대표 주자가 필리포 인자기입니다. 알렉스 퍼거슨이 “저 친구는 오프사이드 위치에서 태어났다"고 했더니, 인자기가 “다행히 1미터 온사이드로 태어나서 골을 넣었다"고 받아쳤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반 니스텔로이가 맨유에서 넣은 150골 중 18야드 박스 밖에서 넣은 골이 단 한 개였다는 통계는, 이 종족이 얼마나 특화된 사냥꾼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지금은 공격수에게도 수비와 압박, 빌드업 가담을 요구하기에 “골만 넣는” 선수가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클래식 윙어#

측면을 끝까지 파고들어 바이라인에서 크로스를 올리던 정통 윙어도 희귀해졌습니다(요즘은 안으로 접어 슛하는 “인버티드 윙어"가 대세입니다). 그 시절 최고의 장면 중 하나가 라이언 긱스의 1999년 FA컵 4강 아스널전 솔로 골입니다. 하프라인부터 수비를 줄줄이 제치고 시먼을 무너뜨린 그 골을,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선수를 보며 운 적이 두 번 있는데, 첫째가 마라도나, 둘째가 긱스"라는 말로 헌정했습니다.


철학이 충돌하던 명경기들#

서로 다른 색깔이 부딪힐 때, 축구는 가장 극적이었습니다.

  • 1982년 이탈리아 3~2 브라질. 무승부만 해도 통과인 브라질의 화려한 공격이, 파올로 로시의 해트트릭 앞에 무너졌습니다. 지쿠는 이날을 “축구가 죽은 날"이라 불렀습니다. 아름다움이 실리에 패한 상징적 경기입니다.
  • 1989년 유러피언컵 결승, 사키의 밀란 4~0 스테아우아. 아리고 사키는 전통적 맨마킹을 버리고 조직적 존 마킹과 고압박을 도입해 “카테나치오를 죽인 팀"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훗날 펩과 클롭에게로 이어집니다.
  • 2010년 챔피언스리그 4강, 무리뉴의 인테르 vs 펩의 바르사. 점유의 펩과 실리·역습의 무리뉴. 현대 축구의 가장 유명한 이분법이 시작된 무대입니다. 인테르는 1차전 3~1 승리 후 2차전을 10명으로 버텨내며 45년 만의 유럽 정상을 향해 나아갔고, 무리뉴는 캄프 누 그라운드에 뛰어들며 “내 커리어 최고의 순간"이라 외쳤습니다.

이런 경기들이 명승부였던 이유는, 두 팀이 서로 다른 정답을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같은 정답지를 든 두 팀의 경기에서는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종류의 드라마였습니다.


2부를 마치며#

이렇게 적고 보니 그립긴 합니다. 카테나치오와 토탈 풋볼, 등번호 10번과 리베로, 박스 안의 여우와 측면을 째는 윙어. 분명히 그 시절 축구에는 지금보다 더 또렷한 색깔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부의 결론을 잊지 맙시다. 그 색깔의 일부는 정말로 사라졌지만, 일부는 우리 기억이 더 선명하게 칠해 놓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 색깔이 가장 잘 살아남은 무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월드컵 입니다.

클럽 축구는 돈과 시간으로 선수를 갈아 끼우며 스타일을 통일할 수 있지만, 국가대표팀은 그럴 수 없습니다.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은 며칠뿐이고, 선수는 사고 팔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월드컵에는 여전히 클럽 축구가 잃어버린 혼돈과 개성이 남아 있습니다.

다음 3부에서는 드디어 본론입니다. 지금 진행 중인 2026 월드컵을, 옛날 팬의 눈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기는 구체적인 방법 을 이야기하겠습니다. 18세 천재부터 38세 메시의 라스트 댄스까지, 그리고 새벽잠을 포기할 가치가 있는 이유들을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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