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Claude Opus 5 를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들어가며#

Pt.1 에서는 규칙과 예절, 그리고 단수와 축을 다뤘습니다. 요약하면 상대 돌을 잡는 법 이었습니다.

이번 편은 정확히 그 반대편입니다. 질문은 하나뿐입니다.

내 돌은 어떻게 죽지 않는가?

입문자가 첫 판을 끝까지 두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이 질문에 답을 못 해서입니다. 잡는 법만 알면 공격은 할 수 있지만, 내가 쌓아 올린 돌이 왜 통째로 사라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답의 핵심은 규칙책의 아주 짧은 예외 조항 하나에 걸려 있습니다. 한국기원 바둑규칙 제4조입니다.

착수 시 활로가 없는 곳은 돌을 놓을 수 없다. 단, 상대방의 돌을 따낼 때에는 놓을 수 있다.

Pt.1 은 앞 문장만 소개하고 뒷 문장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뒷 문장이 두 눈이 왜 필요한지, 가짜 눈이 왜 가짜인지, 패가 왜 생기는지 를 전부 설명합니다. 이 글은 그 한 줄을 세 번 써먹는 이야기입니다.

표기법#

Pt.1 은 도해에 화살표를 섞어 썼는데, 이번에는 판에 좌표를 붙여 위치를 정확히 가리킬 수 있게 했습니다.

a b c d e 1 2 3
표시
검은 돌 흑돌
흰 돌 백돌
아무것도 없는 교차점 빈 점
붉은 점 눈여겨볼 자리(급소 등)
위쪽 a, b, c 열(가로 위치)
왼쪽 1, 2, 3 행(세로 위치)

위 그림에서 흑돌은 b1a2, 백돌은 b2, 강조점이 찍힌 곳은 c2 입니다. 본문에서 자리를 가리킬 때 이 좌표를 씁니다.


1장. 돌의 강약 — 잇기와 끊기#

1.1. 이으면 활로를 합친다#

돌 두 점이 떨어져 있는 모양입니다.

a b c d e 1 2 3

b2 의 활로는 b1, a2, c2, b3 네 곳입니다. d2 도 마찬가지로 네 곳입니다. 얼핏 활로 여덟 개처럼 보이지만, 둘은 별개의 돌 입니다. 백은 b2 하나만 노려서 네 수면 잡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붙여 놓았습니다.

a b c d e 1 2 3 4

c2c3 은 한 덩어리입니다. 이 덩어리의 활로는 c1, b2, d2, b3, d3, c4 여섯 곳이고, 여섯 곳을 전부 막아야 두 점이 함께 잡힙니다.

핵심은 숫자 4와 6의 차이가 아닙니다. 이으면 한 번에 잡히거나 한 번에 살아남는 운명 공동체 가 된다는 점입니다. 바둑에서 강한 돌이란 활로가 많은 돌이 아니라, 잡히려면 통째로 잡혀야 하는 돌입니다.

1.2. 빈삼각이 나쁜 이유#

같은 돌 세 개라도 모양에 따라 활로가 달라집니다. 곧게 선 세 점입니다.

a b c d e 1 2 3

활로는 b1, c1, d1, a2, e2, b3, c3, d3 여덟 곳입니다.

이번에는 ㄱ자로 굽은 세 점입니다.

a b c d 1 2 3 4

활로는 b1, c1, a2, d2, a3, c3, b4 일곱 곳 입니다. 돌을 똑같이 세 개 썼는데 활로가 하나 적습니다.

이 모양을 빈삼각(empty triangle) 이라고 부릅니다. 비어 있는 c3 이 삼각형의 빈 꼭짓점이라 붙은 이름입니다. 초보자가 무의식적으로 가장 많이 만드는 모양이자, 바둑에서 대표적인 악형(惡形)으로 꼽힙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돌은 더 썼는데 얻은 것이 더 적기 때문입니다.

1.3. 끊기면 왜 두 배로 힘든가#

대각선으로 놓인 두 점입니다.

a b c d 1 2 3 4

b2c3이어져 있지 않습니다. 바둑에서 연결은 가로세로 인접만 인정하고 대각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끊는 자리는 c2b3 두 곳입니다. 백이 c2 에 두면 흑은 b3 에 두어 이을 수 있고, 백이 b3 에 두면 흑은 c2 로 이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둘 중 어느 쪽을 당해도 나머지 하나로 해결되는 관계 를 맞보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두 곳을 다 내주면 흑돌은 완전히 두 덩어리가 됩니다. 이것이 끊음이 무서운 진짜 이유입니다.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살아 있는 돌이 되려면 눈이 두 개 필요합니다. 한 덩어리였을 때는 눈 두 개면 충분했는데, 끊겨서 두 덩어리가 되면 눈 네 개 를 만들어야 합니다. 공간은 그대로인데 요구 조건만 두 배가 됩니다.

연습문제 1. 아래에서 백이 c2 에 두어 끊으려 합니다. 흑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a b c d 1 2 3 4
정답 보기

b3 입니다. b3b2 와 세로로, c3 과 가로로 각각 인접하므로 세 점이 한 덩어리가 됩니다.

a b c d 1 2 3 4

c2 로 이으려 해도 그 자리는 이미 백이 차지했습니다. 끊는 자리가 두 곳일 때는 상대가 한 곳을 차지하는 즉시 나머지 한 곳을 두는 것 이 원칙입니다.


2장. 삶의 조건 — 두 눈#

2.1. 눈이란 무엇인가#

눈(眼) 은 내 돌로 완전히 둘러싸인 빈 점입니다. 정의만 보면 Pt.1 의 ‘집’과 비슷하지만, 사활을 이야기할 때 눈은 다르게 읽어야 합니다.

눈은 상대가 메울 수 없는 활로 입니다.

왜 메울 수 없는지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제4조에 있습니다.

2.2. 눈이 하나뿐이면 죽는다#

귀에 자리 잡은 흑돌입니다. 바깥은 백이 완전히 둘러쌌습니다.

a b c d 1 2 3 4

흑 세 점 b1, a2, b2 는 한 덩어리이고, 이 덩어리의 활로를 세어 보면 a1 단 한 곳 입니다. 그리고 a1 은 귀의 점이라 이웃이 b1a2 둘뿐인데 둘 다 흑돌이므로, 형태상 완벽한 눈입니다.

여기서 백이 a1 에 두면 어떻게 될까요.

백돌 a1 자신의 활로는 0입니다. 원칙대로라면 자살수라 둘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수는 동시에 흑 세 점의 마지막 활로를 메웁니다. 제4조의 예외가 발동합니다.

단, 상대방의 돌을 따낼 때에는 놓을 수 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먼저 흑 세 점이 판에서 걷히고, 그다음에 백돌 a1 의 활로를 셉니다. 흑이 사라졌으니 b1a2 가 빈 점이 되어 백은 멀쩡히 살아 있습니다.

a b c d 1 2 3 4

눈이 하나뿐인 돌은 반드시 죽습니다. 눈처럼 생겼어도 그것이 마지막 활로라면, 상대는 언제든 그 자리에 둘 권리를 얻습니다.

2.3. 눈이 둘이면 잡을 수 없다#

같은 자리에 눈을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a b c 1 2 3 4 5

흑돌 b1, a2, b2, b3, a4, b4 는 전부 한 덩어리입니다. 이 덩어리의 활로는 a1a3 두 곳이고, 둘 다 눈입니다.

  • a1: 이웃은 b1, a2 뿐이고 둘 다 흑
  • a3: 이웃은 a2, a4, b3 이고 전부 흑

이제 백이 a1 에 두려고 하면 이렇게 됩니다. 백돌 자신의 활로는 0입니다. 흑을 따내지도 못합니다. 흑에게는 아직 a3 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따냄이 성립하지 않으므로 예외 조항이 적용되지 않고, 그냥 자살수라 둘 수 없습니다. a3 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은 두 눈 중 어느 쪽에도 손을 댈 수 없습니다. 하나를 메우려면 다른 하나가 먼저 메워져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또 다른 하나가 먼저 메워져 있어야 합니다. 순환하는 조건이라 영원히 충족되지 않습니다.

눈이 두 개인 돌은 상대가 몇 수를 두든 절대 잡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둑에서 유일한 무조건적 안전 보장입니다. 앞으로 판 위에서 내려야 할 거의 모든 판단의 기준선이 여기입니다.1

2.4. 눈처럼 생겼지만 눈이 아닌 것#

가장 흔한 함정입니다.

a b c d e 1 2 3 4

c2 의 네 이웃 c1, b2, d2, c3 은 전부 흑입니다. 정의상 눈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b2 한 점의 활로를 세어 보십시오. a2 는 백, b1 도 백, b3 도 백입니다. 남은 활로는 c2 하나뿐입니다. 이 흑 한 점은 이미 단수에 걸려 있습니다.

백이 c2 에 두면 제4조 예외가 또 발동합니다. 백돌 자신은 활로가 0이지만 흑 b2 를 따내므로 합법입니다. 따내고 나면 b2 가 비어 백돌의 활로가 되고, 눈이었던 자리는 백돌 차지가 됩니다.

이런 자리를 가짜 눈(false eye) 이라고 합니다. 눈의 조건은 네 이웃이 아니라, 그 이웃들이 끝까지 버틸 수 있는가 입니다.

실전에서는 매번 활로를 셀 수 없으니 다음 판별법을 씁니다.

눈 자리의 대각 방향 점들을 봅니다.

  • 중앙이면 대각 네 점 중 셋 이상
  • 변이나 귀면 대각점이 전부

내 돌이어야 진짜 눈입니다.

위 가짜 눈 예시에서 c2 는 중앙이고 대각 네 점은 b1, d1, b3, d3 인데 흑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2.3의 a1 은 귀라 대각점이 b2 하나뿐이고 그것이 흑이며, a3 은 변이라 대각점이 b2b4 인데 둘 다 흑입니다. 판별법과 결과가 맞아떨어집니다.

이 판별법은 경험칙이라 드문 예외가 있습니다. 확신이 서지 않으면 결국 활로를 세는 쪽이 정확합니다.

2.5. 궁도 — 공간이 넓으면 산다#

두 눈을 만들려면 공간이 필요합니다. 내 돌로 둘러싼 빈 공간을 궁도(宮圖) 라 하고, 궁도의 넓이와 모양이 삶과 죽음을 결정합니다.

먼저 세 점짜리 궁도입니다. 흑이 변에 자리 잡았고 바깥은 백이 둘러쌌습니다.

a b c d e 1 2 3

흑의 궁도는 a1, b1, c1 세 점입니다. 백이 가운데인 b1 에 두면 흑은 죽습니다. 이 수를 급소에 둔다고 해서 치중(置中) 이라 부릅니다.

a b c d e 1 2 3

흑이 a1 에 두면 백이 c1 에, 흑이 c1 에 두면 백이 a1 에 두어 흑 전체를 따냅니다. 흑이 손을 빼도 백이 남은 자리를 메우면 그만입니다. 세 점으로는 두 눈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모양을 직삼궁(直三宮) 이라 합니다.

이번에는 한 점 넓혀 네 점짜리 궁도입니다.

a b c d e f 1 2 3

궁도는 a1~d1 네 점입니다. 급소는 안쪽 두 점 b1c1 인데, 이 둘이 맞보기 입니다. 백이 b1 에 치중하면 흑은 c1 에 둡니다.

a b c d e f 1 2 3

이제 백 한 점의 활로는 a1 뿐이라 단수입니다. 흑이 a1 에 두어 따내고 나면 궁도는 b1d1 두 곳으로 갈라지고, 각각이 온전한 눈이 됩니다. 흑은 삽니다. 이 모양이 직사궁(直四宮) 입니다.

같은 한 줄인데 세 점은 죽고 네 점은 삽니다. 궁도 한 점의 무게가 이렇습니다.

모양별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상대가 급소에 먼저 두었을 때 의 결과입니다.

궁도 이름 결과
2점 죽음
3점 (직선) 직삼궁 죽음
3점 (굽은 모양) 곡삼궁 죽음
4점 (직선) 직사궁
4점 (굽은 모양) 곡사궁
4점 (번개 모양) 번개사궁
4점 (정사각형) 정사궁 죽음
4점 (삿갓 모양) 꽃사궁 죽음
5점 (오궁도화·십자) 오궁도화 죽음
5점 (그 외)
6점 (매화육궁) 매화육궁 죽음
6점 (그 외)
7점 이상 2

외울 것이 많아 보이지만 실전에서 쓸 결론은 짧습니다.

궁도가 넓을수록 안전합니다. 여섯 점 이상 확보했다면 매화육궁만 피하면 되고, 일곱 점 이상이면 모양을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상대 돌을 죽이러 갈 때의 결론도 같은 문장의 뒷면입니다. 궁도를 좁히고, 좁아졌으면 급소에 치중합니다.

연습문제 2. 아래 두 흑돌은 궁도가 똑같이 네 점입니다. 어느 쪽이 살아 있을까요? 둘 다 백 차례입니다.

[가]

a b c d e f 1 2 3

[나]

a b c d 1 2 3 4
정답 보기

[가]는 살아 있고 [나]는 죽어 있습니다.

[가]의 궁도는 a1, b1, c1, d1 네 점이 한 줄로 늘어선 직사궁 입니다. 본문에서 본 대로 안쪽 두 점이 맞보기라 백이 어느 쪽에 치중해도 흑이 반대쪽을 차지해 두 눈을 만듭니다.

[나]의 궁도는 a1, b1, a2, b2 네 점이 정사각형을 이룬 정사궁 입니다. 이 모양은 백이 손을 댈 필요조차 없이 그대로 죽어 있습니다. 흑이 먼저 안에 두어도 남는 공간이 세 점짜리 굽은 궁도가 되어 두 눈이 나오지 않습니다.

“직사궁은 살고 정사궁은 죽는다” 는 바둑 격언이 이것입니다. 궁도는 점의 개수가 아니라 모양이 결정합니다. 같은 네 점이어도 길게 뻗으면 살고 뭉치면 죽습니다.


3장. 끝나지 않는 싸움 — 패#

3.1. 무한 반복이 가능한 모양#

지금까지의 이야기에는 구멍이 하나 있습니다. 서로 상대 돌을 계속 따낼 수 있는 모양이 존재합니다.

a b c d e 1 2 3 4

백 한 점 b2 를 보면 이웃이 b1, a2, b3 전부 흑이고 활로는 c2 하나뿐입니다. 단수입니다.

흑이 c2 에 둡니다. 흑돌 자신의 활로는 0이지만 백 b2 를 따내므로 제4조 예외로 합법입니다. 세 번째 등장입니다.

a b c d e 1 2 3 4

그런데 이제는 방금 둔 흑 한 점 c2 가 단수입니다. 활로가 b2 하나뿐입니다. 백이 b2 에 두면 같은 논리로 흑 한 점을 따내고, 판은 정확히 처음 모양으로 돌아갑니다.

막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영원히 돌을 주고받게 됩니다. 그래서 규칙이 하나 붙습니다.

3.2. 되따냄 금지와 팻감#

한국기원 바둑규칙 제6조입니다.

흑과 백이 상대방의 돌 한 개를 번갈아가며 따낼 수 있는 형태를 패라고 하며, 이 경우에는 다른 곳에 한 번 이상 놓은 다음(팻감 쓰기)에 패를 따낼 수 있다.

이 모양을 패(劫) 라 합니다. 방금 따낸 자리를 곧바로 되따내는 것만 금지되고, 다른 곳에 한 수를 둔 뒤에는 허용됩니다.

여기서 팻감 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패를 되따내려면 한 수를 다른 데 써야 하는데, 그 한 수가 상대가 반드시 받아야 할 만큼 위협적이어야 합니다. 상대가 무시하고 패를 이어 버리면 손해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패싸움은 이런 구조가 됩니다.

  1. 흑이 패를 따냄
  2. 백은 곧바로 되따낼 수 없으므로 다른 곳에 위협적인 수(팻감)를 둠
  3. 흑이 그 팻감에 응수함
  4. 백이 이제 패를 되따냄
  5. 이번엔 흑이 팻감을 씀

팻감이 먼저 떨어지는 쪽이 패를 내줍니다. 패는 판 전체의 자원이 걸린 싸움이며,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번지는 지점입니다. 입문 단계에서는 “패가 나면 급하게 되따내려 하지 말고, 판 다른 곳에 상대가 무시하기 어려운 수가 있는지 먼저 센다” 정도만 몸에 익히면 충분합니다.

3.3. 그래도 반복되면 무승부#

패 규칙으로도 막히지 않는 모양이 드물게 나옵니다. 세 개의 패가 얽히거나(3패), 따내지 않고도 같은 형태가 되풀이되는 경우(장생)입니다. 이럴 때는 제9조가 적용됩니다.

동형반복이란 일정한 수순이 경과된 후 최초와 동일한 형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3패·장생·순환패·양패·3점 장생 등은 무승부 로 한다.

바둑에 무승부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덤에 0.5집을 붙여 계가상 무승부를 없애 놓고도 규칙에 무승부 조항이 남아 있는 것은, 집 계산이 아니라 형태의 반복 때문에 승부가 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전에서 마주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연습문제 3. 3.1의 패 모양에서 흑이 c2 에 두어 백 한 점을 따냈습니다. 백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a b c d e 1 2 3 4
정답 보기

b2 에 두어 되따내는 것만은 할 수 없습니다. 제6조가 금지합니다.

백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둘입니다.

  1. 판 다른 곳에 팻감을 둔다. 흑이 받아 주면 다음 차례에 b2 로 되따낼 수 있습니다.
  2. 패를 포기하고 다른 큰 자리를 차지한다. 흑이 b2 를 메워 패를 없애면 흑 한 점을 확실히 잃지만, 그동안 백은 다른 곳에서 두 수를 벌게 됩니다.

패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패로 잃는 것보다 다른 곳에서 얻는 것이 크면 내주는 편이 낫습니다. 팻감을 센다는 것은 결국 이 비교를 한다는 뜻입니다.


4장. 9줄 판에서 쓰기#

4.1. 귀가 싼 이유#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전부 “공간을 얼마나 싸게 확보하는가” 로 수렴합니다. 같은 9집을 만드는 데 드는 돌의 수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귀에서 9집을 두르는 모양입니다.

a b c d e 1 2 3 4 5

a1~c3 아홉 점이 흑집이고, 울타리로 쓴 돌은 d1, d2, d3, d4, c4, b4, a4 일곱 개 입니다. 판의 가장자리 두 면을 벽으로 공짜로 쓴 덕분입니다.

중앙에서 같은 9집을 두르면 이렇게 됩니다.

a b c d e f g 1 2 3 4 5 6 7

울타리에 쓴 돌이 열여섯 개 입니다. 같은 집을 얻는 데 돌이 두 배 넘게 듭니다.

“귀부터, 다음이 변, 중앙은 마지막” 이라는 바둑의 오래된 순서는 취향이 아니라 이 산수에서 나옵니다. 9줄 판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판이 좁아 중앙에 집을 짓겠다고 나서면 네 귀를 전부 내주게 되고, 그러면 이미 계가로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같은 이유로 사활도 귀가 유리합니다. 궁도를 벽으로 감싸는 비용이 싸니 같은 돌 수로 더 넓은 궁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4.2. 한 수를 두기 전에 확인할 것#

Pt.1 과 이번 편에서 배운 것을 실전 순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서부터 급한 순서입니다.

  1. 내 돌 중에 단수에 걸린 것이 있는가? 있으면 잇거나 도망치거나 버릴지 먼저 정합니다.
  2. 내 돌 중에 두 눈이 없는 덩어리가 있는가? 궁도가 세 점 이하로 좁혀졌다면 이미 위험합니다.
  3. 상대 돌 중에 두 눈이 없는 덩어리가 있는가? 있으면 궁도를 좁히고, 좁아졌으면 급소에 치중합니다.
  4. 끊을 자리가 있는가, 끊길 자리가 있는가? 끊기면 눈을 두 배로 만들어야 합니다.
  5. 여기까지 급한 것이 없으면 아직 임자 없는 귀와 변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찾습니다.

1번부터 4번까지가 이번 편의 내용이고, 이 넷이 해결되고 나서야 5번이 의미를 가집니다. 입문 단계의 패착은 거의 전부 급한 순서를 뒤집는 데서 나옵니다.

4.3. 계가 다시 보기#

Pt.1 은 계가를 “내 집 + 내가 따낸 돌” 로 설명했습니다. 결과는 맞지만, 한국기원 바둑규칙 제11조의 표현은 조금 다릅니다.

각자 잡은 돌로 상대방의 집을 메우며, 집이 많은 쪽이 이긴다.

따낸 돌을 내 점수에 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집에 채워 넣어 상대 점수를 깎습니다. 계산 결과는 같지만 이 표현이 감각적으로 더 정확합니다. 상대 돌 하나를 잡는 것은 내 집 하나를 버는 동시에 상대 집 하나를 지우는 일이며, 그래서 한 점의 가치는 실질적으로 두 집 입니다.

이 관점은 4.2의 우선순위와도 이어집니다. 큰 돌 덩어리를 통째로 잡는 것이 왜 그렇게 결정적인지, 반대로 내 돌을 통째로 죽이는 것이 왜 그 판을 끝내는 일인지가 여기서 설명됩니다.


정리#

이번 편의 뼈대는 규칙책 한 줄이었습니다.

활로가 없는 곳에는 둘 수 없다. 단, 상대방의 돌을 따낼 때에는 놓을 수 있다.

이 예외 조항이 세 번 등장했습니다.

등장 결과
눈이 하나뿐인 돌 상대가 그 눈에 둘 수 있음 → 죽음
눈이 둘인 돌 따냄이 성립하지 않아 둘 수 없음 →
가짜 눈 눈을 떠받치는 돌이 먼저 따내짐 → 죽음
서로 따낼 수 있어 무한 반복 → 되따냄 금지

그리고 실전에서 기억할 것은 세 문장입니다.

  1. 두 눈이 있으면 절대 잡히지 않는다. 바둑에서 유일한 무조건적 안전 보장입니다.
  2. 궁도가 넓을수록 안전하다. 일곱 점 이상이면 모양을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3. 귀가 가장 싸다. 같은 집, 같은 삶을 절반 이하의 돌로 얻습니다.

Pt.1 의 마무리에서 조급해하지 말라고 적었는데, 이번 편에도 같은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두 눈과 궁도는 한 번 읽어서 손에 붙는 종류의 지식이 아닙니다. 9줄 판에서 실제로 죽여 보고 죽어 보는 편이 훨씬 빠릅니다. 직삼궁으로 죽어 본 사람은 다시는 세 점짜리 궁도로 버티려 하지 않습니다.


References#


  1. 예외가 하나 있습니다. 빅(seki) 입니다. 한국기원 바둑규칙 제8조는 “흑과 백이 공배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여 서로 따낼 수 없는 형태” 로 정의하며, 이 경우 두 눈이 없어도 잡히지 않습니다. 다만 빅이 된 자리는 집계산에서 제외 됩니다. 잡히지는 않지만 집도 되지 않는, 무승부에 가까운 결말입니다. ↩︎

  2. 일곱 점 이상은 어떤 모양이든 잡히지 않습니다. 다만 나비칠궁(butterfly seven)이라 불리는 한 모양은 결과가 빅이 되어, 잡히지는 않지만 집도 되지 않습니다. 또한 귀는 예외가 많습니다. 귀의 곡사궁, 귀의 직사각형 6궁처럼 중앙·변에서는 살아 있는 모양이 귀에서는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