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가이드 Pt.2: 죽지 않는 법 — 잇기, 두 눈, 그리고 패
이 글은 Claude Opus 5 를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들어가며#
Pt.1 에서는 규칙과 예절, 그리고 단수와 축을 다뤘습니다. 요약하면 상대 돌을 잡는 법 이었습니다.
이번 편은 정확히 그 반대편입니다. 질문은 하나뿐입니다.
내 돌은 어떻게 죽지 않는가?
입문자가 첫 판을 끝까지 두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이 질문에 답을 못 해서입니다. 잡는 법만 알면 공격은 할 수 있지만, 내가 쌓아 올린 돌이 왜 통째로 사라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답의 핵심은 규칙책의 아주 짧은 예외 조항 하나에 걸려 있습니다. 한국기원 바둑규칙 제4조입니다.
착수 시 활로가 없는 곳은 돌을 놓을 수 없다. 단, 상대방의 돌을 따낼 때에는 놓을 수 있다.
Pt.1 은 앞 문장만 소개하고 뒷 문장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뒷 문장이 두 눈이 왜 필요한지, 가짜 눈이 왜 가짜인지, 패가 왜 생기는지 를 전부 설명합니다. 이 글은 그 한 줄을 세 번 써먹는 이야기입니다.
표기법#
Pt.1 은 도해에 화살표를 섞어 썼는데, 이번에는 판에 좌표를 붙여 위치를 정확히 가리킬 수 있게 했습니다.
| 표시 | 뜻 |
|---|---|
| 검은 돌 | 흑돌 |
| 흰 돌 | 백돌 |
| 아무것도 없는 교차점 | 빈 점 |
| 붉은 점 | 눈여겨볼 자리(급소 등) |
위쪽 a, b, c… |
열(가로 위치) |
왼쪽 1, 2, 3… |
행(세로 위치) |
위 그림에서 흑돌은 b1 과 a2, 백돌은 b2, 강조점이 찍힌 곳은 c2 입니다. 본문에서 자리를 가리킬 때 이 좌표를 씁니다.
1장. 돌의 강약 — 잇기와 끊기#
1.1. 이으면 활로를 합친다#
돌 두 점이 떨어져 있는 모양입니다.
b2 의 활로는 b1, a2, c2, b3 네 곳입니다. d2 도 마찬가지로 네 곳입니다. 얼핏 활로 여덟 개처럼 보이지만, 둘은 별개의 돌 입니다. 백은 b2 하나만 노려서 네 수면 잡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붙여 놓았습니다.
c2 와 c3 은 한 덩어리입니다. 이 덩어리의 활로는 c1, b2, d2, b3, d3, c4 여섯 곳이고, 여섯 곳을 전부 막아야 두 점이 함께 잡힙니다.
핵심은 숫자 4와 6의 차이가 아닙니다. 이으면 한 번에 잡히거나 한 번에 살아남는 운명 공동체 가 된다는 점입니다. 바둑에서 강한 돌이란 활로가 많은 돌이 아니라, 잡히려면 통째로 잡혀야 하는 돌입니다.
1.2. 빈삼각이 나쁜 이유#
같은 돌 세 개라도 모양에 따라 활로가 달라집니다. 곧게 선 세 점입니다.
활로는 b1, c1, d1, a2, e2, b3, c3, d3 여덟 곳입니다.
이번에는 ㄱ자로 굽은 세 점입니다.
활로는 b1, c1, a2, d2, a3, c3, b4 일곱 곳 입니다. 돌을 똑같이 세 개 썼는데 활로가 하나 적습니다.
이 모양을 빈삼각(empty triangle) 이라고 부릅니다. 비어 있는 c3 이 삼각형의 빈 꼭짓점이라 붙은 이름입니다. 초보자가 무의식적으로 가장 많이 만드는 모양이자, 바둑에서 대표적인 악형(惡形)으로 꼽힙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돌은 더 썼는데 얻은 것이 더 적기 때문입니다.
1.3. 끊기면 왜 두 배로 힘든가#
대각선으로 놓인 두 점입니다.
b2 와 c3 은 이어져 있지 않습니다. 바둑에서 연결은 가로세로 인접만 인정하고 대각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끊는 자리는 c2 와 b3 두 곳입니다. 백이 c2 에 두면 흑은 b3 에 두어 이을 수 있고, 백이 b3 에 두면 흑은 c2 로 이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둘 중 어느 쪽을 당해도 나머지 하나로 해결되는 관계 를 맞보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두 곳을 다 내주면 흑돌은 완전히 두 덩어리가 됩니다. 이것이 끊음이 무서운 진짜 이유입니다.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살아 있는 돌이 되려면 눈이 두 개 필요합니다. 한 덩어리였을 때는 눈 두 개면 충분했는데, 끊겨서 두 덩어리가 되면 눈 네 개 를 만들어야 합니다. 공간은 그대로인데 요구 조건만 두 배가 됩니다.
연습문제 1. 아래에서 백이
c2에 두어 끊으려 합니다. 흑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정답 보기
b3 입니다. b3 은 b2 와 세로로, c3 과 가로로 각각 인접하므로 세 점이 한 덩어리가 됩니다.
c2 로 이으려 해도 그 자리는 이미 백이 차지했습니다. 끊는 자리가 두 곳일 때는 상대가 한 곳을 차지하는 즉시 나머지 한 곳을 두는 것 이 원칙입니다.
2장. 삶의 조건 — 두 눈#
2.1. 눈이란 무엇인가#
눈(眼) 은 내 돌로 완전히 둘러싸인 빈 점입니다. 정의만 보면 Pt.1 의 ‘집’과 비슷하지만, 사활을 이야기할 때 눈은 다르게 읽어야 합니다.
눈은 상대가 메울 수 없는 활로 입니다.
왜 메울 수 없는지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제4조에 있습니다.
2.2. 눈이 하나뿐이면 죽는다#
귀에 자리 잡은 흑돌입니다. 바깥은 백이 완전히 둘러쌌습니다.
흑 세 점 b1, a2, b2 는 한 덩어리이고, 이 덩어리의 활로를 세어 보면 a1 단 한 곳 입니다. 그리고 a1 은 귀의 점이라 이웃이 b1 과 a2 둘뿐인데 둘 다 흑돌이므로, 형태상 완벽한 눈입니다.
여기서 백이 a1 에 두면 어떻게 될까요.
백돌 a1 자신의 활로는 0입니다. 원칙대로라면 자살수라 둘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수는 동시에 흑 세 점의 마지막 활로를 메웁니다. 제4조의 예외가 발동합니다.
단, 상대방의 돌을 따낼 때에는 놓을 수 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먼저 흑 세 점이 판에서 걷히고, 그다음에 백돌 a1 의 활로를 셉니다. 흑이 사라졌으니 b1 과 a2 가 빈 점이 되어 백은 멀쩡히 살아 있습니다.
눈이 하나뿐인 돌은 반드시 죽습니다. 눈처럼 생겼어도 그것이 마지막 활로라면, 상대는 언제든 그 자리에 둘 권리를 얻습니다.
2.3. 눈이 둘이면 잡을 수 없다#
같은 자리에 눈을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흑돌 b1, a2, b2, b3, a4, b4 는 전부 한 덩어리입니다. 이 덩어리의 활로는 a1 과 a3 두 곳이고, 둘 다 눈입니다.
a1: 이웃은b1,a2뿐이고 둘 다 흑a3: 이웃은a2,a4,b3이고 전부 흑
이제 백이 a1 에 두려고 하면 이렇게 됩니다. 백돌 자신의 활로는 0입니다. 흑을 따내지도 못합니다. 흑에게는 아직 a3 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따냄이 성립하지 않으므로 예외 조항이 적용되지 않고, 그냥 자살수라 둘 수 없습니다. a3 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은 두 눈 중 어느 쪽에도 손을 댈 수 없습니다. 하나를 메우려면 다른 하나가 먼저 메워져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또 다른 하나가 먼저 메워져 있어야 합니다. 순환하는 조건이라 영원히 충족되지 않습니다.
눈이 두 개인 돌은 상대가 몇 수를 두든 절대 잡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둑에서 유일한 무조건적 안전 보장입니다. 앞으로 판 위에서 내려야 할 거의 모든 판단의 기준선이 여기입니다.1
2.4. 눈처럼 생겼지만 눈이 아닌 것#
가장 흔한 함정입니다.
c2 의 네 이웃 c1, b2, d2, c3 은 전부 흑입니다. 정의상 눈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b2 한 점의 활로를 세어 보십시오. a2 는 백, b1 도 백, b3 도 백입니다. 남은 활로는 c2 하나뿐입니다. 이 흑 한 점은 이미 단수에 걸려 있습니다.
백이 c2 에 두면 제4조 예외가 또 발동합니다. 백돌 자신은 활로가 0이지만 흑 b2 를 따내므로 합법입니다. 따내고 나면 b2 가 비어 백돌의 활로가 되고, 눈이었던 자리는 백돌 차지가 됩니다.
이런 자리를 가짜 눈(false eye) 이라고 합니다. 눈의 조건은 네 이웃이 아니라, 그 이웃들이 끝까지 버틸 수 있는가 입니다.
실전에서는 매번 활로를 셀 수 없으니 다음 판별법을 씁니다.
눈 자리의 대각 방향 점들을 봅니다.
- 중앙이면 대각 네 점 중 셋 이상
- 변이나 귀면 대각점이 전부
내 돌이어야 진짜 눈입니다.
위 가짜 눈 예시에서 c2 는 중앙이고 대각 네 점은 b1, d1, b3, d3 인데 흑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2.3의 a1 은 귀라 대각점이 b2 하나뿐이고 그것이 흑이며, a3 은 변이라 대각점이 b2 와 b4 인데 둘 다 흑입니다. 판별법과 결과가 맞아떨어집니다.
이 판별법은 경험칙이라 드문 예외가 있습니다. 확신이 서지 않으면 결국 활로를 세는 쪽이 정확합니다.
2.5. 궁도 — 공간이 넓으면 산다#
두 눈을 만들려면 공간이 필요합니다. 내 돌로 둘러싼 빈 공간을 궁도(宮圖) 라 하고, 궁도의 넓이와 모양이 삶과 죽음을 결정합니다.
먼저 세 점짜리 궁도입니다. 흑이 변에 자리 잡았고 바깥은 백이 둘러쌌습니다.
흑의 궁도는 a1, b1, c1 세 점입니다. 백이 가운데인 b1 에 두면 흑은 죽습니다. 이 수를 급소에 둔다고 해서 치중(置中) 이라 부릅니다.
흑이 a1 에 두면 백이 c1 에, 흑이 c1 에 두면 백이 a1 에 두어 흑 전체를 따냅니다. 흑이 손을 빼도 백이 남은 자리를 메우면 그만입니다. 세 점으로는 두 눈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모양을 직삼궁(直三宮) 이라 합니다.
이번에는 한 점 넓혀 네 점짜리 궁도입니다.
궁도는 a1~d1 네 점입니다. 급소는 안쪽 두 점 b1 과 c1 인데, 이 둘이 맞보기 입니다. 백이 b1 에 치중하면 흑은 c1 에 둡니다.
이제 백 한 점의 활로는 a1 뿐이라 단수입니다. 흑이 a1 에 두어 따내고 나면 궁도는 b1 과 d1 두 곳으로 갈라지고, 각각이 온전한 눈이 됩니다. 흑은 삽니다. 이 모양이 직사궁(直四宮) 입니다.
같은 한 줄인데 세 점은 죽고 네 점은 삽니다. 궁도 한 점의 무게가 이렇습니다.
모양별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상대가 급소에 먼저 두었을 때 의 결과입니다.
| 궁도 | 이름 | 결과 |
|---|---|---|
| 2점 | — | 죽음 |
| 3점 (직선) | 직삼궁 | 죽음 |
| 3점 (굽은 모양) | 곡삼궁 | 죽음 |
| 4점 (직선) | 직사궁 | 삶 |
| 4점 (굽은 모양) | 곡사궁 | 삶 |
| 4점 (번개 모양) | 번개사궁 | 삶 |
| 4점 (정사각형) | 정사궁 | 죽음 |
| 4점 (삿갓 모양) | 꽃사궁 | 죽음 |
| 5점 (오궁도화·십자) | 오궁도화 | 죽음 |
| 5점 (그 외) | — | 삶 |
| 6점 (매화육궁) | 매화육궁 | 죽음 |
| 6점 (그 외) | — | 삶 |
| 7점 이상 | — | 삶2 |
외울 것이 많아 보이지만 실전에서 쓸 결론은 짧습니다.
궁도가 넓을수록 안전합니다. 여섯 점 이상 확보했다면 매화육궁만 피하면 되고, 일곱 점 이상이면 모양을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상대 돌을 죽이러 갈 때의 결론도 같은 문장의 뒷면입니다. 궁도를 좁히고, 좁아졌으면 급소에 치중합니다.
연습문제 2. 아래 두 흑돌은 궁도가 똑같이 네 점입니다. 어느 쪽이 살아 있을까요? 둘 다 백 차례입니다.
[가]
[나]
정답 보기
[가]는 살아 있고 [나]는 죽어 있습니다.
[가]의 궁도는 a1, b1, c1, d1 네 점이 한 줄로 늘어선 직사궁 입니다. 본문에서 본 대로 안쪽 두 점이 맞보기라 백이 어느 쪽에 치중해도 흑이 반대쪽을 차지해 두 눈을 만듭니다.
[나]의 궁도는 a1, b1, a2, b2 네 점이 정사각형을 이룬 정사궁 입니다. 이 모양은 백이 손을 댈 필요조차 없이 그대로 죽어 있습니다. 흑이 먼저 안에 두어도 남는 공간이 세 점짜리 굽은 궁도가 되어 두 눈이 나오지 않습니다.
“직사궁은 살고 정사궁은 죽는다” 는 바둑 격언이 이것입니다. 궁도는 점의 개수가 아니라 모양이 결정합니다. 같은 네 점이어도 길게 뻗으면 살고 뭉치면 죽습니다.
3장. 끝나지 않는 싸움 — 패#
3.1. 무한 반복이 가능한 모양#
지금까지의 이야기에는 구멍이 하나 있습니다. 서로 상대 돌을 계속 따낼 수 있는 모양이 존재합니다.
백 한 점 b2 를 보면 이웃이 b1, a2, b3 전부 흑이고 활로는 c2 하나뿐입니다. 단수입니다.
흑이 c2 에 둡니다. 흑돌 자신의 활로는 0이지만 백 b2 를 따내므로 제4조 예외로 합법입니다. 세 번째 등장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방금 둔 흑 한 점 c2 가 단수입니다. 활로가 b2 하나뿐입니다. 백이 b2 에 두면 같은 논리로 흑 한 점을 따내고, 판은 정확히 처음 모양으로 돌아갑니다.
막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영원히 돌을 주고받게 됩니다. 그래서 규칙이 하나 붙습니다.
3.2. 되따냄 금지와 팻감#
한국기원 바둑규칙 제6조입니다.
흑과 백이 상대방의 돌 한 개를 번갈아가며 따낼 수 있는 형태를 패라고 하며, 이 경우에는 다른 곳에 한 번 이상 놓은 다음(팻감 쓰기)에 패를 따낼 수 있다.
이 모양을 패(劫) 라 합니다. 방금 따낸 자리를 곧바로 되따내는 것만 금지되고, 다른 곳에 한 수를 둔 뒤에는 허용됩니다.
여기서 팻감 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패를 되따내려면 한 수를 다른 데 써야 하는데, 그 한 수가 상대가 반드시 받아야 할 만큼 위협적이어야 합니다. 상대가 무시하고 패를 이어 버리면 손해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패싸움은 이런 구조가 됩니다.
- 흑이 패를 따냄
- 백은 곧바로 되따낼 수 없으므로 다른 곳에 위협적인 수(팻감)를 둠
- 흑이 그 팻감에 응수함
- 백이 이제 패를 되따냄
- 이번엔 흑이 팻감을 씀
팻감이 먼저 떨어지는 쪽이 패를 내줍니다. 패는 판 전체의 자원이 걸린 싸움이며,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번지는 지점입니다. 입문 단계에서는 “패가 나면 급하게 되따내려 하지 말고, 판 다른 곳에 상대가 무시하기 어려운 수가 있는지 먼저 센다” 정도만 몸에 익히면 충분합니다.
3.3. 그래도 반복되면 무승부#
패 규칙으로도 막히지 않는 모양이 드물게 나옵니다. 세 개의 패가 얽히거나(3패), 따내지 않고도 같은 형태가 되풀이되는 경우(장생)입니다. 이럴 때는 제9조가 적용됩니다.
동형반복이란 일정한 수순이 경과된 후 최초와 동일한 형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3패·장생·순환패·양패·3점 장생 등은 무승부 로 한다.
바둑에 무승부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덤에 0.5집을 붙여 계가상 무승부를 없애 놓고도 규칙에 무승부 조항이 남아 있는 것은, 집 계산이 아니라 형태의 반복 때문에 승부가 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전에서 마주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연습문제 3. 3.1의 패 모양에서 흑이
c2에 두어 백 한 점을 따냈습니다. 백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답 보기
b2 에 두어 되따내는 것만은 할 수 없습니다. 제6조가 금지합니다.
백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둘입니다.
- 판 다른 곳에 팻감을 둔다. 흑이 받아 주면 다음 차례에
b2로 되따낼 수 있습니다. - 패를 포기하고 다른 큰 자리를 차지한다. 흑이
b2를 메워 패를 없애면 흑 한 점을 확실히 잃지만, 그동안 백은 다른 곳에서 두 수를 벌게 됩니다.
패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패로 잃는 것보다 다른 곳에서 얻는 것이 크면 내주는 편이 낫습니다. 팻감을 센다는 것은 결국 이 비교를 한다는 뜻입니다.
4장. 9줄 판에서 쓰기#
4.1. 귀가 싼 이유#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전부 “공간을 얼마나 싸게 확보하는가” 로 수렴합니다. 같은 9집을 만드는 데 드는 돌의 수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귀에서 9집을 두르는 모양입니다.
a1~c3 아홉 점이 흑집이고, 울타리로 쓴 돌은 d1, d2, d3, d4, c4, b4, a4 일곱 개 입니다. 판의 가장자리 두 면을 벽으로 공짜로 쓴 덕분입니다.
중앙에서 같은 9집을 두르면 이렇게 됩니다.
울타리에 쓴 돌이 열여섯 개 입니다. 같은 집을 얻는 데 돌이 두 배 넘게 듭니다.
“귀부터, 다음이 변, 중앙은 마지막” 이라는 바둑의 오래된 순서는 취향이 아니라 이 산수에서 나옵니다. 9줄 판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판이 좁아 중앙에 집을 짓겠다고 나서면 네 귀를 전부 내주게 되고, 그러면 이미 계가로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같은 이유로 사활도 귀가 유리합니다. 궁도를 벽으로 감싸는 비용이 싸니 같은 돌 수로 더 넓은 궁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4.2. 한 수를 두기 전에 확인할 것#
Pt.1 과 이번 편에서 배운 것을 실전 순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서부터 급한 순서입니다.
- 내 돌 중에 단수에 걸린 것이 있는가? 있으면 잇거나 도망치거나 버릴지 먼저 정합니다.
- 내 돌 중에 두 눈이 없는 덩어리가 있는가? 궁도가 세 점 이하로 좁혀졌다면 이미 위험합니다.
- 상대 돌 중에 두 눈이 없는 덩어리가 있는가? 있으면 궁도를 좁히고, 좁아졌으면 급소에 치중합니다.
- 끊을 자리가 있는가, 끊길 자리가 있는가? 끊기면 눈을 두 배로 만들어야 합니다.
- 여기까지 급한 것이 없으면 아직 임자 없는 귀와 변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찾습니다.
1번부터 4번까지가 이번 편의 내용이고, 이 넷이 해결되고 나서야 5번이 의미를 가집니다. 입문 단계의 패착은 거의 전부 급한 순서를 뒤집는 데서 나옵니다.
4.3. 계가 다시 보기#
Pt.1 은 계가를 “내 집 + 내가 따낸 돌” 로 설명했습니다. 결과는 맞지만, 한국기원 바둑규칙 제11조의 표현은 조금 다릅니다.
각자 잡은 돌로 상대방의 집을 메우며, 집이 많은 쪽이 이긴다.
따낸 돌을 내 점수에 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집에 채워 넣어 상대 점수를 깎습니다. 계산 결과는 같지만 이 표현이 감각적으로 더 정확합니다. 상대 돌 하나를 잡는 것은 내 집 하나를 버는 동시에 상대 집 하나를 지우는 일이며, 그래서 한 점의 가치는 실질적으로 두 집 입니다.
이 관점은 4.2의 우선순위와도 이어집니다. 큰 돌 덩어리를 통째로 잡는 것이 왜 그렇게 결정적인지, 반대로 내 돌을 통째로 죽이는 것이 왜 그 판을 끝내는 일인지가 여기서 설명됩니다.
정리#
이번 편의 뼈대는 규칙책 한 줄이었습니다.
활로가 없는 곳에는 둘 수 없다. 단, 상대방의 돌을 따낼 때에는 놓을 수 있다.
이 예외 조항이 세 번 등장했습니다.
| 등장 | 결과 |
|---|---|
| 눈이 하나뿐인 돌 | 상대가 그 눈에 둘 수 있음 → 죽음 |
| 눈이 둘인 돌 | 따냄이 성립하지 않아 둘 수 없음 → 삶 |
| 가짜 눈 | 눈을 떠받치는 돌이 먼저 따내짐 → 죽음 |
| 패 | 서로 따낼 수 있어 무한 반복 → 되따냄 금지 |
그리고 실전에서 기억할 것은 세 문장입니다.
- 두 눈이 있으면 절대 잡히지 않는다. 바둑에서 유일한 무조건적 안전 보장입니다.
- 궁도가 넓을수록 안전하다. 일곱 점 이상이면 모양을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 귀가 가장 싸다. 같은 집, 같은 삶을 절반 이하의 돌로 얻습니다.
Pt.1 의 마무리에서 조급해하지 말라고 적었는데, 이번 편에도 같은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두 눈과 궁도는 한 번 읽어서 손에 붙는 종류의 지식이 아닙니다. 9줄 판에서 실제로 죽여 보고 죽어 보는 편이 훨씬 빠릅니다. 직삼궁으로 죽어 본 사람은 다시는 세 점짜리 궁도로 버티려 하지 않습니다.
References#
- 한국기원 바둑규칙 — 제4조 착수금지점, 제6조 패, 제8조 빅, 제9조 동형반복, 제11조 계가
- 한국기원 경기규정 — 덤 6집반
- 궁도 (바둑) — 한국어 위키백과 — 궁도별 한국어 명칭
- Basic living eye shapes — Sensei’s Library — 살아 있는 궁도
- Unsettled eyeshapes — Sensei’s Library — 급소가 있는 궁도
- Dead eyeshapes — Sensei’s Library — 죽은 궁도
- Two Eyes — Sensei’s Library — 두 눈과 삶
- Seki — Sensei’s Library — 빅
- 바둑 가이드: Pt.1. 바둑의 규칙과 예절, 돌 잡는 기술
-
예외가 하나 있습니다. 빅(seki) 입니다. 한국기원 바둑규칙 제8조는 “흑과 백이 공배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여 서로 따낼 수 없는 형태” 로 정의하며, 이 경우 두 눈이 없어도 잡히지 않습니다. 다만 빅이 된 자리는 집계산에서 제외 됩니다. 잡히지는 않지만 집도 되지 않는, 무승부에 가까운 결말입니다. ↩︎
-
일곱 점 이상은 어떤 모양이든 잡히지 않습니다. 다만 나비칠궁(butterfly seven)이라 불리는 한 모양은 결과가 빅이 되어, 잡히지는 않지만 집도 되지 않습니다. 또한 귀는 예외가 많습니다. 귀의 곡사궁, 귀의 직사각형 6궁처럼 중앙·변에서는 살아 있는 모양이 귀에서는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