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소개: 후안 로만 리켈메: 마지막 엔간체, 느림의 미학
이 글은 Claude Opus 4.8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1. 서론: 시간을 멈추는 남자#
축구는 점점 빨라지는 스포츠입니다. 한 세기에 걸쳐 선수들은 더 빨리 달렸고, 더 강하게 압박했으며, 공을 잡는 순간 주어지는 시간은 점점 더 짧아졌습니다. 현대 축구의 모든 진화는 ‘속도’ 라는 하나의 방향을 향해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후안 로만 리켈메는 그 흐름에 정면으로 맞선 선수였습니다. 그는 빠르지 않았습니다. 폭발적인 드리블도, 지칠 줄 모르는 활동량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느렸고, 걸었으며, 종종 경기장 한복판에 멈춰 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공을 잡는 순간, 경기의 시계는 그의 박자에 맞춰 다시 흘렀습니다. 모두가 빨라질 때 홀로 느려짐으로써 경기를 지배하는 것, 이것이 리켈메가 구현한 역설의 예술이었습니다.
그는 ‘엔간체(Enganche)’, 즉 아르헨티나 축구가 사랑한 고전형 10번 플레이메이커의 마지막 적자로 불립니다. 미드필드와 공격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 라는 뜻의 이 포지션은 디에고 마라도나로 상징되는 한 시대의 축구 철학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리켈메는, 전술이 그 자리를 더 이상 허락하지 않게 된 시대에 그 역할을 끝까지 고집한 마지막 장인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후안 로만 리켈메라는 선수의 유니크함, 그의 장점과 약점, 플레이 스타일과 전성기, 그리고 그를 향한 축구인들의 헌사를 통해 ‘마지막 엔간체’ 가 남긴 의미를 살펴봅니다.
2. 유년 시절과 데뷔: 라 보키타의 신성#
후안 로만 리켈메는 1978년 6월 2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의 돈 토르쿠아토에서 가난한 대가족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열한 명의 형제 중 맏이였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생들을 돌보며 거리에서 공을 찼고, 흙바닥 위에서 다듬어진 그의 볼 컨트롤은 일찍부터 비범했습니다.
그의 재능은 자연스럽게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의 유소년 시스템으로 이어졌습니다. 흥미롭게도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는 디에고 마라도나를 배출한 바로 그 클럽이었습니다. 그러나 리켈메는 이후 아르헨티나 최고의 명문이자 마라도나의 또 다른 친정이기도 한 보카 주니어스로 향했고, 1996년 보카의 1군 무대에 데뷔하며 ‘라 봄보네라(La Bombonera)’ 의 새로운 우상으로 떠오릅니다.
데뷔 초기부터 그는 단순한 유망주가 아니었습니다. 보카의 거친 팬덤은 화려한 개인기와 결정적인 패스, 그리고 큰 경기에서 흔들리지 않는 배짱을 가진 이 젊은 10번에게 곧바로 매료되었습니다. 보카에서 그는 카를로스 비앙키 감독 아래 황금기를 맞이하며, 자신의 이름을 남미를 넘어 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합니다.
3. 보카 주니어스 1기: 남미를 정복하다 (1996-2002)#
리켈메의 첫 번째 보카 시절은 그가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시기인 동시에, 보카 주니어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팀의 심장이었던 시기입니다.
카를로스 비앙키 감독이 이끈 이 시기의 보카는 남미를 완전히 지배했습니다. 리켈메는 팀의 공격을 설계하는 지휘자로서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을 여러 차례 이끌었고, 특히 남미 클럽 최고의 영예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2000년과 2001년 연속으로 들어 올렸습니다.
그중에서도 2000년의 성취는 특별했습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이어 출전한 인터컨티넨탈컵(도요타컵) 결승에서, 보카는 당대 유럽 최강이자 갈락티코의 서막을 알리던 레알 마드리드를 2-1로 꺾었습니다. 리켈메는 이 경기에서 마르틴 팔레르모의 두 골을 조율하며 세계 무대에서도 자신의 클래스가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 시기 리켈메는 2001년 남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며 대륙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랐고, 유럽 빅클럽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 젊은 엔간체에게 쏠리게 됩니다.
표 1: 후안 로만 리켈메 커리어 통산 기록 및 주요 수상 내역#
| 구분 | 소속/대회 | 출전 | 득점 |
|---|---|---|---|
| 클럽 | 보카 주니어스 (1기, 1996~2002) | 약 166 | 약 37 |
| FC 바르셀로나 (2002~2003) | 약 30 | 약 3 | |
| 비야레알 CF (2003~2007) | 약 143 | 약 44 | |
| 보카 주니어스 (2기, 2007~2014) | 약 167 | 약 51 | |
|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2014~2015) | 약 27 | 약 6 | |
| 국가대표 | 아르헨티나 | 51 | 17 |
| 주요 수상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 3회 (2000, 2001, 2007) | - |
|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 1회 (2000) | - | |
| 아르헨티나 1부 리그 우승 | 다수 회 | - | |
| 올림픽 금메달 | 1회 (2008 베이징) | - | |
| 남미 올해의 선수 | 1회 (2001) | - | |
| 코파 아메리카 최우수 선수 | 1회 (2007) | - |
기록은 집계 방식과 대회 범위에 따라 출처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4. FC 바르셀로나: 어긋난 만남 (2002-2003)#
2002년, 리켈메는 약 1,100만 유로의 이적료에 FC 바르셀로나로 향했습니다. 남미를 정복한 천재가 유럽 최고의 무대에 도전하는, 모두가 기대한 이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만남은 리켈메 커리어에서 가장 쓰라린 실패로 기록됩니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지휘봉은 루이스 반 할 감독이 잡고 있었습니다. 효율과 조직, 강한 압박을 중시한 네덜란드식 축구 철학의 신봉자였던 반 할에게, 공을 오래 소유하고 경기를 자신의 박자로 늦추는 리켈메의 스타일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반 할은 리켈메를 그의 천부적 자리인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측면으로 내몰았고, 끊임없이 수비 가담과 활동량을 요구했습니다. 느림의 미학을 가진 선수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역할을 강요한 셈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반 할은 리켈메의 영입이 자신의 뜻이 아니었으며, 구단 회장의 정치적 결정에 의한 ‘회장의 영입’ 이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감독의 신뢰를 받지 못한 선수가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리켈메는 단 한 시즌 만에 자신의 색깔을 거의 보여주지 못한 채 바르셀로나를 떠나게 됩니다.
이 실패는 단순히 한 선수의 부진이 아니라, 한 선수의 천재성이 전술 시스템과 감독의 철학에 얼마나 깊이 의존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였습니다. 같은 선수가 환경에 따라 무용지물이 될 수도, 대륙 최고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곧이어 비야레알에서 극적으로 증명됩니다.
5. 비야레알 CF: 노란 잠수함의 황금기 (2003-2007)#

2003년, 리켈메는 임대를 거쳐 비야레알 CF로 이적합니다. 인구 5만의 작은 도시를 연고로 하는 ‘노란 잠수함(El Submarino Amarillo)’ 비야레알은, 리켈메를 만나 구단 역사상 가장 빛나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이었습니다. 페예그리니는 반 할과 정반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리켈메를 팀의 절대적인 중심에 놓고, 시스템 전체를 이 엔간체를 위해 설계했습니다. 리켈메가 가장 편안한 위치에서 공을 잡고 경기를 조율할 수 있도록 주변 동료들을 배치했고, 그의 수비 부담을 덜어줄 활동량 좋은 미드필더들을 곁에 두었습니다. 환경이 바뀌자 같은 선수가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되었습니다.
리켈메는 비야레알에서 라 리가를 대표하는 플레이메이커로 만개했습니다. 그의 정점은 2005-06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였습니다. 작은 클럽 비야레알은 리켈메를 앞세워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 진출하는 기적을 썼고, 상대는 아르센 벵거가 이끄는 아스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광의 무대는 동시에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잔인한 순간을 안겨줍니다. 1차전을 0-1로 내준 비야레알은 홈에서 열린 2차전 후반 종료 직전, 동점골이자 연장으로 향할 수 있는 페널티킥을 얻어냅니다. 키커는 당연히 팀의 심장 리켈메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슛은 아스널의 골키퍼 옌스 레만에게 막히고 말았고, 비야레알의 동화 같은 여정은 그렇게 결승 문턱에서 멈춰 섰습니다. 이 페널티킥 실축은 평정심의 대명사였던 리켈메조차 인간이었음을 보여준,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아픈 장면으로 회자됩니다.
6. 보카 주니어스 2기: 집으로 돌아온 왕 (2007-2014)#
유럽에서의 영광과 아픔을 모두 경험한 리켈메는, 2007년 다시 자신의 집인 보카 주니어스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는 복귀하자마자 보카를 다시 한번 남미의 정상에 올려놓습니다.
2007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리켈메는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는 이 대회에서 보카의 모든 공격을 지휘했고, 결승에서 브라질의 그레미우를 꺾으며 자신의 세 번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그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선수였으며, ‘집으로 돌아온 왕’ 의 귀환을 완벽하게 자축했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보카의 절대적인 상징으로 군림하며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을 추가했습니다. 부상과 부침이 있었지만, 라 봄보네라의 팬들에게 리켈메는 단순한 선수가 아니라 클럽의 정체성 그 자체였습니다. “Román es Boca(로만이 곧 보카다)” 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등번호 10번과 그의 이름은, 한 세대의 보카 팬들에게 클럽을 사랑하는 방식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7.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영광과 미완의 서사#

리켈메의 국가대표 경력은 찬란한 영광과 깊은 아쉬움이 공존하는, 미완의 서사입니다.
그의 정점은 2006년 독일 월드컵이었습니다. 조세 페케르만 감독이 이끈 이 대회에서 리켈메는 아르헨티나의 명실상부한 지휘자였습니다. 특히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6-0으로 대파한 경기에서 만들어낸, 24번의 패스가 이어진 끝에 에스테반 캄비아소가 마무리한 골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팀 골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 패스의 흐름 한가운데에 리켈메의 절묘한 발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대회는 그에게 가장 큰 논란도 안겨주었습니다. 개최국 독일과의 8강전, 1-0으로 앞서던 후반전에 페케르만 감독은 팀의 심장이자 경기를 통제하던 리켈메를 교체로 빼냈습니다. 리켈메가 빠진 아르헨티나는 곧 동점을 허용했고,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습니다. 경기를 지배하던 선수를 스스로 거둬들인 이 교체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월드컵 최악의 용병술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이후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그는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며 아르헨티나를 결승으로 이끌었지만, 브라질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리켈메는 와일드카드이자 주장으로 출전해 리오넬 메시, 앙헬 디 마리아, 세르히오 아구에로 등 젊은 재능들을 이끌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노련한 거장과 떠오르는 신성들이 조화를 이룬 이 팀의 중심에는 리켈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국가대표 경력은 행복하게 마무리되지 못했습니다. 2008년, 디에고 마라도나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자 두 사람의 갈등 속에 리켈메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합니다. 통산 51경기 17골. 그의 재능에 비하면 결코 화려하다고 할 수 없는 이 기록은, 그가 클럽과 대표팀에서 얼마나 다른 대우를 받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8. 플레이 스타일 분석: 엔간체#
8.1. 엔간체의 정의#
‘엔간체(Enganche)’ 는 스페인어로 ‘연결고리’, ‘갈고리’ 를 의미합니다. 축구에서 이 역할은 미드필드와 공격수 사이에 위치하여, 수비진과 공격진을 잇는 고전적인 공격형 플레이메이커, 즉 전형적인 ‘10번’ 을 지칭합니다. 이는 아르헨티나와 남미 축구가 오랫동안 사랑해온 포지션으로, 디에고 마라도나가 그 원형이자 정점이었습니다.
엔간체는 수비 가담이나 활동량보다는 창의성과 패스, 경기 조율에 모든 것을 집중합니다. 팀의 모든 공격이 이 선수를 거쳐 흐르며, 그에게는 수비의 의무 대신 경기를 만들어내는 자유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4-2-3-1, 4-3-3 등 압박과 활동량을 중시하는 현대 전술이 보편화되면서, 수비에 기여하지 않는 고전적 엔간체의 자리는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리켈메가 ‘마지막 엔간체’ 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8.2. 리켈메의 경기 방식#
리켈메는 엔간체라는 역할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구현한 선수였습니다. 그의 플레이는 다음과 같은 핵심 능력에 기반했습니다.
- 라 파우사(La Pausa): 리켈메를 정의하는 가장 상징적인 무기입니다. 모두가 서두를 때 공을 멈춰 들고 한 박자 늦추는 능력으로, 동료가 더 나은 위치로 침투할 시간을 만들고 상대 수비의 호흡을 무너뜨렸습니다.
- 비전과 패스: 다른 선수들이 보지 못하는 공간을 읽어내고, 그곳으로 정확한 스루패스를 찔러 넣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 볼 컨트롤과 감바(Gambeta): 좁은 공간에서도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느린 듯하면서도 상대를 벗겨내는 특유의 드리블을 구사했습니다.
- 데드볼 스페셜리스트: 정확한 프리킥과 페널티킥은 그의 또 다른 상징이었습니다. 코너킥 상황에서의 정확한 배급 역시 위협적이었습니다.
- 빅 게임 멘털리티: 큰 경기일수록 더 침착하고 대담해지는 강심장의 소유자였습니다.
8.3. 장점#
리켈메의 가장 큰 장점은 경기 전체의 박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었습니다. 그가 공을 잡으면 팀 전체가 그의 호흡에 맞춰 움직였고, 상대는 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끊임없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강하게 압박하면 그 특유의 파우사와 탈압박으로 빠져나가며 주변에 공간을 만들었고, 내버려 두면 단 한 번의 패스로 수비 라인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는 또한 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선수였습니다. 비야레알이라는 작은 클럽을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으로, 보카를 남미 정상으로 이끈 사실은 그의 존재 자체가 팀의 전술적 핵심이자 정신적 지주였음을 보여줍니다. 평범한 동료들도 리켈메 곁에서는 더 좋은 선수가 되었습니다.
8.4. 단점#
그러나 리켈메의 천재성은 명확한 약점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느렸고, 폭발적인 스피드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수비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으며, 활동량이 적어 공을 소유하지 못할 때는 경기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공이 없으면 지루하다” 는 그의 말은 그의 철학인 동시에 약점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를 기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의 빈 공간을 메워줄 활동량 좋은 동료들과, 그를 중심에 놓는 전술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실패와 비야레알에서의 성공이 그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압박과 트랜지션 속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현대 축구에서, 수비 부담을 지지 않는 엔간체는 점점 사치스러운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리켈메의 약점은 곧, 그가 속한 포지션 자체가 시대와 불화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9. 유니크함: 시대와 불화한 예술가#
리켈메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그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축구가 나아가는 방향과 정반대로 걸어간, 시대를 거스른 예술가였기 때문입니다.
축구가 점점 더 빠르고 강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진화하던 2000년대, 리켈메는 홀로 느림과 우아함, 그리고 비효율의 가치를 고집했습니다. 그는 데이터와 압박 전술이 지배하기 시작한 시대에, 한 명의 천재가 경기를 통째로 지배하던 낭만적인 시대의 마지막 증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향한 사랑에는 언제나 일종의 향수가 깃들어 있습니다. 리켈메를 좋아한다는 것은 사라져가는 한 시대의 축구를 그리워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의 느림은 무능이 아니라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빠르게 달릴 수 없어서 느린 것이 아니라, 느려야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느렸습니다. 모두가 가속 페달을 밟을 때 홀로 브레이크를 밟음으로써 경기의 리듬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 역설이야말로 리켈메라는 선수의 본질이었습니다.
10. 축구인들의 헌사#
리켈메를 향한 동료와 거장들의 평가는, 그가 단순한 스타를 넘어 하나의 경외 대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 펩 과르디올라: 점유율 축구의 거장 과르디올라는 리켈메를 공개적으로 흠모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경기를 자신의 박자로 통제하는 리켈메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돈을 내고서라도 보고 싶은 선수로 그를 꼽았습니다.
- 마누엘 페예그리니: 비야레알에서 리켈메를 만개시킨 감독은 그를 두고, 자신이 지도한 선수 중 경기를 읽는 능력에서 손꼽히는 선수라고 평했습니다. 그는 팀 전체를 리켈메를 위해 설계함으로써 그 믿음을 행동으로 증명했습니다.
- 보카 주니어스 팬들: “Román es Boca(로만이 곧 보카다)” 라는 문구는, 한 선수가 어떻게 클럽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라 봄보네라의 팬들에게 리켈메는 종교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 후안 로만 리켈메 (자신에 대해): “나는 공을 가지고 있을 때 행복하다. 공이 없으면, 나는 지루하다.” 이 짧은 한마디는 그의 축구 철학 전체를 압축합니다. 그에게 축구란 공을 다루는 예술이지, 공을 쫓아 달리는 노동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헌사들은 한 가지 사실로 수렴합니다. 리켈메는 호불호가 갈리는 선수였지만, 그를 사랑한 이들에게는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11. 결론: 마지막 엔간체#
후안 로만 리켈메의 축구 여정은, 사라져가는 한 시대의 축구가 마지막으로 피워낸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보카에서 남미를 정복했고, 바르셀로나에서 시대와 환경의 벽을 절감했으며, 비야레알에서 다시 한번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했고, 끝내 집으로 돌아와 왕으로 군림했습니다.
그는 우승 트로피의 개수나 발롱도르 같은 개인 수상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선수입니다. 그의 위대함은 기록이 아니라, 그가 경기장 위에서 만들어낸 시간의 질감에 있습니다. 모두가 빨라지는 세계에서 홀로 느림의 미학을 고집하며, 한 명의 천재가 경기를 지배하던 마지막 시대를 증언한 것, 그것이 리켈메가 남긴 유산입니다.
전술의 진화는 결국 엔간체라는 포지션을 역사 속으로 밀어냈고, 그래서 리켈메 이후 그와 같은 선수는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 그대로 ‘마지막’ 엔간체였습니다. 후안 로만 리켈메는, 효율의 시대에 우아함을, 속도의 시대에 멈춤을 선택한, 시대를 거슬러 기억될 마지막 10번으로 남을 것입니다.
References#
- https://en.wikipedia.org/wiki/Juan_Rom%C3%A1n_Riquelme
- https://es.wikipedia.org/wiki/Juan_Rom%C3%A1n_Riquelme
- https://namu.wiki/w/후안%20로만%20리켈메
- https://en.wikipedia.org/wiki/2005%E2%80%9306_UEFA_Champions_League
- https://en.wikipedia.org/wiki/Football_at_the_2008_Summer_Olympics_%E2%80%93_Men%27s_tourna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