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Quora 에 있는 자녀 관련 질문과 답변을 Gemini 를 통해 번역한 것입니다.


Question#

솔직히 말해,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나요?


Answer 1 (Angie Martin)#

저는 네 명의 아이를 낳은 것을 100%, 아주 깊이 후회합니다. 섣불리 비난하기 전에, 제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세요.

저는 내향적이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태어났을 때 ‘엔젤(천사)‘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고, 그 이름은 제가 평생 완벽한 아이가 되기 위해 애쓰게 만들었죠.

슬프게도, 제가 스스로를 몰아붙인 것만큼이나 주변 사람들은 저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모두가 제가 ‘다르다’는 이유로 늘 불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저는 생후 6개월에 두개골 골절을 겪은 탓에 소음민감증(misophonia)이라는 청각 손상과 감각 문제를 안고 살았어요.

청각이 예민했기 때문에 편두통과 스트레스를 피하려면 언제 어디서든 어떻게든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훔쳐내야만 했습니다.

제 주변의 모든 외향적인 사람들은 제가 그들에게 100%의 시간과 관심을 쏟지 못하는 것에 항상 불만스러워했습니다. 어른들은 제가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제 내면의 균형을 잡기 위해 예술과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이유로 저를 정서적으로 끊임없이 몰아세웠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저의 생활 방식에 대한 그들의 불만은 결국 사람들이 저를 미쳤다, 조울증이다, 라고 부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낚시를 가고 싶어 하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게 미친 짓이었습니다. 명상을 하기 위해 샤워나 화장실에서 시간을 조금 더 보내는 것도, 산책을 하는 것도 미친 짓이었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다니, 분명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들 했습니다.

심지어 제 주변 몇몇 사람들은 저의 ‘조용한’ 성격과 활동이 얼마나 싫었는지 보여주겠다며 갤러리에 전시될 수준의 제 예술 작품들을 물리적으로 파괴해 버렸습니다. 저는 그들의 행동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한 갤러리에서 작품 전시 제의를 받은 직후인 18살에 영원히 그림을 그만두었습니다.

수많은 정신과 의사들을 찾아가 제게 진단되지 않은 정신 질환이 있으니 마법의 약으로 고쳐달라고 설득하려 했던 노력도 소용없었습니다. 저는 그 약을 먹으면 다른 사람들이 저를 견딜 만하게 여겨줄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죠.

저는 인생의 대부분을 엄마가 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절대 가질 수 없을 거라는 말을 들었고, 아이를 가지려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마침내, 저는 20년에 걸쳐 네 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정말 날아갈 듯이 기뻤어요. 아이들은 조금 독특하고, ADHD와 자폐 성향이 있었지만, 저는 그런 아이들을 미치도록 사랑했습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의 모든 것을 사랑했죠.

하지만 제가 겪었던 것처럼, 외향적인 제 남편과 시댁 식구들은 저의 성격을 싫어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키우고, 멘토링하고, 이끌어주는 방식을 싫어했습니다. 아이들이 미술 활동을 하며 집을 어지럽히는 것을 싫어했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도록 물건을 분해하고 재조립하게 두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새로운 장소에 데려가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게 하는 것을 싫어했죠.

무엇보다도, 그들은 제가 가끔씩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오했습니다. 온종일 마당 일을 하고 집을 수리한 뒤에 제가 단 5분만이라도 아이들을 봐달라고, 그래서 조금 긴 샤워를 하고 싶다고 부탁하는 것을 혐오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가끔 휴식을 요청했다는 이유로 저를 “나쁜 엄마”, “나쁜 아내"라고 불렀습니다. 조용한 시간이나 혼자만의 시간을 달라는 제 요구가 어딘가 비상식적인 것이라고 몇몇 사람들을 설득하기까지 했죠. 할머니(시어머니)는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면서요. 그녀는 모두가 따라야 할 완벽함의 상징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그녀의 시험에서 탈락한 상태였습니다. 그녀가 ‘흰 장갑 검사’를 하러 방문한 날, 벽난로 선반의 먼지를 미처 닦지 못했거든요. 그들은 제가 남편에게 제대로 된 주부 역할을 하기는커녕 ‘아이들과 노느라’ 너무 바빴다고 말했습니다.

저보다 육아를 훨씬 잘한다고 주장하던 그 모든 사람들은 법원이 제가 ‘조울증’이라고 판단하도록 설득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제 청각 과민 문제가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조울증’ 약을 처방받으려 애쓰기도 했습니다.

제가 조울증 증상을 전부 외워서 읊으며 사람들을 설득하려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저를 보며 말했죠. “당신은 그냥 슬픈 겁니다. 아이 넷을 잃었잖아요. 그걸 괜찮게 만들어 줄 마법의 약은 제게 없습니다.”

아이들 없이 5년의 세월이 흐르고, 30명이 넘는 전문가를 만난 후에야 겨우 한 명을 속여 정신과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약도 제 집과 아이들을 잃은 슬픔을 조금도 낫게 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부끄러워 더 이상 그 누구의 얼굴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5년째 차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전남편은 아이들의 양육권을 가져가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년 후, 제게 이메일 한 통을 보냈습니다. 그가 제게 ‘잔소리’하는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아이들을 데려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샤워할 시간을 달라고 했던 제 부탁에 대해, 제 등에 다시 한번 칼을 꽂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했나 봅니다.

아마 할머니는 여전히 슈퍼맘이고, 저는 여전히 개똥 같은 존재인 거겠죠.

저는 딱 한 번, 쉬고 샤워할 수 있게 자리를 비워달라고 그에게 ‘잔소리’를 했습니다. 제 인생의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 대신 제 자신을 돌보려고 했던 바로 그 순간, 저는 어째서인지 더 이상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물에 빠진 아이 세 명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제 아기가 다른 가족에게 옮은 뇌수막염으로 죽어갈 때 심폐소생술로 되살려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길에서 차가 멈춘 사람을 도와주는 등, 수많은 인도적인 일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무엇을 하든,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단 한 번도 충분했던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결코 충분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청각이 예민한 내향적인 사람이고, 그것이 제가 제 아이들의 엄마가 될 자격이 없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어머니는 작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어머니 역시 스스로가 충분히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끼셨기 때문입니다. 그 비참한 동네의 모든 사람들은 어머니 역시 끔찍한 엄마였다고 몰아세웠습니다. 예민한 청력을 가진 끔찍한 딸을 낳았으니, 당연히 끔찍한 엄마겠죠, 그렇죠? 20년의 엄마 인생에서 딱 한 번 도움을 요청했다는 이유로 모든 아이를 잃은 딸을 둔 엄마니까요.

만약 제가 아이들을 낳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쯤 제 예술 작품과 책으로 꽤 많은 돈을 벌었을지도 모릅니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제가 사랑했던 글쓰기나 미술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기 때문에, 20년의 재능을 허비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끔찍한 엄마’라는 오명과 낙인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이토록 수치스러워하며 고통받지도 않았겠죠.

임신하기까지의 그 모든 어려움부터 제 아이들과의 연락이 끊긴 고통까지, 모든 것을 돌이켜보면 저는 애초에 엄마가 될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아이들을 낳은 것을 후회하는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 아닙니다. 엄마는 완벽해야만 하고, 그 외의 다른 모습은 모두 실패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심지어 동물의 새끼조차도 우리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하면 어미에게서 빼앗아 버립니다. 왜 저는 단지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은 일이 제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상상했을까요.

저는 제 아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아이들도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다른’ 아이들을 ‘다른’ 부모에게서 떼어내 ‘정상적인’ 부부에게 주어 모두를 ‘정상’으로 만들기를 좋아하니까요.


Answer 2 (Trev Doyle)#

제가 실제보다 훨씬 부유하다고 착각했던 한 여자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었습니다. 슬프게도, 그녀의 그런 면은 최악의 단점 축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위해 그녀와 함께하려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주말에만 아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술과 담배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고, 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들이 9살 때 제게로 데려왔습니다.

아들은 제 인생의 태양입니다. 함께 있으면 정말 즐거운 아이예요. 저를 존중하고, 제가 아들을 위해 했던 그리고 하고 있는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압니다. 만약 제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바로 제 아들 같은 아들을 만들어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아들은 이제 14살이고, 우리는 여전히 전형적인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이기도 합니다.

만약 누군가 아들을 제게서 떼어놓는다면, 제가 어떻게 다시 살아갈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아들은 단연코 제 인생 최고의 선물입니다. (물론 제 아내와 강아지들도 사랑합니다만)

그 어떤 것도 아들을 낳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런 생각은 말도 안 되는 소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