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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 발매된 패닉의 2집 은 90년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기록된 가장 충격적이고 전위적인 걸작 중 하나입니다. 1집의 대히트곡 “달팽이"가 만들어낸 서정적인 이미지에 대한 정면 반박이자, 당대 주류 음악계에 대한 통렬한 야유였던 이 앨범은, 사회의 어둡고 기괴한 이면을 파고드는 독창적인 콘셉트와 실험적인 사운드로 전무후무한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냈습니다. 본 포스트에서는 이 문제적 앨범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저의 요구사항에 대한 Gemini 2.5 pro 의 대답에 의해 초고가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패닉(Panic): 90년대의 이단아, 이적과 김진표#

패닉은 1995년 결성된 남성 듀오로, 작사, 작곡, 노래를 책임지는 이적과 랩을 맡은 김진표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은 데뷔와 동시에 주류 음악계의 문법을 뒤흔든 이단아였습니다.

  • 음악적 배경과 멤버:
    • 이적 (보컬, 작사/작곡):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출신의 인텔리겐치아로, 대중음악 가사에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깊이를 더한 천재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사회 비판, 실존적 고뇌 등 기존 가요가 다루지 않던 주제를 독창적인 문법으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습니다. 패닉 이후에는 김동률 등과 ‘카니발’, 한상원 등과 ‘긱스’를 결성했으며,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습니다.
    • 김진표 (랩): 당대의 다른 래퍼들과는 차별화되는, 거칠고 직설적이며 때로는 신경질적인 랩 스타일을 선보였습니다. 이적의 지적인 가사와 대비를 이루는 그의 원초적인 에너지는 패닉 사운드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 한국 대중음악계에 끼친 영향:
    • ‘달팽이’ 신드롬과 반기: 데뷔곡 “달팽이"의 예상치 못한 대성공으로 ‘부드러운 발라드 듀오’라는 이미지를 얻었으나, 이들은 안주하지 않고 2집 을 통해 자신들의 본질이 저항과 실험에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 장르의 파괴와 융합: 록, 포크, 재즈, 힙합, 클래식 등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요소를 자유롭게 뒤섞어 ‘패닉’이라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했습니다.
    • 가사의 지평 확장: 사회 비판, 풍자, 그로테스크한 상상력 등을 가사에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대중음악이 예술적 표현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앨범 ‘밑’의 탄생과 영향#

2집 은 1집의 메가 히트곡 “달팽이"가 만들어낸 대중적 이미지에 대한 정면 반기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적과 김진표는 자신들이 서정적인 발라드 듀오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고, 의도적으로 대중의 기대를 배반하는 가장 어둡고, 기괴하며, 비상업적인 앨범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앨범의 제목 ‘밑’은 문자 그대로 화려한 겉모습 ‘위’가 아닌, 그 아래 감춰진 사회의 추악하고 부조리한 ‘밑바닥’을 탐구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 앨범의 독창성은 단순히 어두운 주제를 다루는 것을 넘어, 그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앨범은 사회가 썩어가는 “냄새"를 맡는 충격적인 사운드 콜라주로 시작하여, 다양한 방식의 사회 비판을 전개합니다. “UFO"는 억압받는 자들의 혁명적 복수극을, “혀"는 선정적인 언론의 폭력성을, “벌레"와 “Mama"는 각각 억압적인 교육 현실과 가정 내의 폭력적인 기대를 정면으로 고발합니다. 또한 “어릿광대” 연작과 같은 우화를 통해 사회적 약자가 희생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그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전복적인 메시지는 전무후무한 사운드 실험과 결합되어 충격을 극대화했습니다. 4분의 5박자(“혀”)와 같은 변칙적인 리듬, 클래식 현악 4중주와 국악기 꽹과리의 결합(“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7분간의 즉흥적인 괴성으로 채워진 12분짜리 대곡(“불면증”) 등은 당시 주류 음악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강(江)“과 같은 지극히 아름답고 서정적인 어쿠스틱 발라드를 배치하여 앨범의 깊이와 역동성을 확보했습니다.

은 상업적으로는 1집에 미치지 못했지만, 평단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리스트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앨범의 진정한 가치는, 아이돌 댄스 음악과 정형화된 발라드가 지배하던 90년대 주류 시장의 한복판에서 가장 극단적인 예술적 실험을 감행하고 성공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이 앨범의 등장은 이후 언니네이발관, 델리스파이스 등 자기 색이 강한 인디/얼터너티브 밴드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으며, 대중음악이 다룰 수 있는 주제와 사운드의 한계를 무한히 확장시킨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Track by Track 분석#

1. 냄새 (Intro)#

앨범의 시작부터 청자의 모든 감각을 뒤흔드는, 지극히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사운드 콜라주입니다. 이 곡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효과음, 김진표의 낮고 음산한 내레이션, 그리고 이적이 쥐어짜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이게 무슨 냄새야?“라고 외치며 시작됩니다. 반음계로만 이루어진 불안한 피아노 선율과 헐떡이는 노파의 숨소리 같은 기괴한 효과음들이 뒤섞여, 정체를 알 수 없는 부패의 근원을 찾아 헤매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청각적으로 구현합니다. “뭔가 썩고 있는데 그게 뭔질 모르겠어"라는 가사는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즉 사회 밑바닥에 만연한 부조리와 병폐를 상징하며, “우릴 병들게 해"라는 구절의 소름 돋는 반복으로 마무리되며 앞으로 펼쳐질 어두운 서사를 강력하게 예고합니다.

2. UFO#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패닉의 전복적인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트랙입니다. 이적은 이 곡을 통해 UFO를 두려운 침략자가 아닌, 부조리한 세상을 심판하고 억압받은 이들을 구원하는 ‘구원자’ 의 이미지로 그려냈습니다. 겉보기에는 밝고 희망찬 멜로디를 가졌지만, 그 가사는 “살찐 돼지들과 거짓 놀음 밑에 피 흘리며 떠난 잊혀져간 모두"가 돌아와 압제자들을 심판하는, 매우 통렬한 사회 비판과 혁명에 대한 환상을 담고 있습니다. 밴드 유앤미블루가 세션으로 참여하여 완성한 사운드는, 이처럼 어두운 가사와 의도적으로 대비를 이루며 오히려 곡의 냉소적인 메시지를 더욱 날카롭게 만듭니다. 절망적인 현실로부터의 단순한 도피가 아닌, 정의로운 복수를 꿈꾸는 이 노래는 앨범의 저항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곡입니다.

3. 혀#

앨범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전위적인 트랙으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언론의 행태를 “비린내 나는 상한 혀” 에 빗대어 통렬하게 비판한 곡입니다. 가사는 부드럽게 다가와 상대를 핥아주며 안심시킨 뒤, 결국 모든 것을 빨아먹고 껍질만 남겨 변기통에 뱉어버리는 ‘혀’의 이중성과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합니다. 이 곡은 파격적인 가사로 인해 당시 심의에서 일부가 묵음 처리되었으며, 이는 오히려 곡의 파괴적인 메시지를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음악적으로는 대중음악에서 극히 드문 4분의 5박자라는 불규칙한 박자를 사용하여 시종일관 불안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당시 밴드 넥스트(N.EX.T)의 기타리스트였던 김세황이 세션으로 참여하여 날카롭고 이죽거리는 듯한 기타 연주를 선보였으며, 이적의 광기 어린 아방가르드한 보컬이 더해져 청자의 귀를 강렬하게 사로잡습니다.

4. 강(江)#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광기와 냉소 속에서 유일하게 차분하고 깊은 서정성을 보여주는 곡입니다. 쉴새 없이 흐르는 강물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어쿠스틱 기타 아르페지오 위에, 이적의 절제되고 잔잔한 보컬이 얹혀 지나간 세월과 강물 위에 떠나보낸 꿈들을 관조적으로 노래합니다. 이적은 이 곡의 감성을 끌어내기 위해 대낮에 소주를 마시며 눈물과 함께 가사와 선율을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으며, 그 처절한 창작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앨범의 다른 곡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이 미니멀한 구성과 서정적인 감성은, 훗날 등장하는 루시드폴(Lucid Fall) 의 음악 세계를 예견한 듯한 선구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청자에게 깊은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는 앨범의 숨구멍 같은 트랙입니다.

5. 어릿광대 (Interlude)#

다음에 이어지는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의 서막을 여는 전주곡(Prelude)입니다. 현악 4중주단이 연주 시작 전 악기를 조율하는 듯한 불안한 배경음 위로, 김진표가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시를 읊조립니다. 가사는 대중의 광기 어린 시선 속에서 위태롭게 춤을 추다 결국 추락하고 마는 ‘거꾸로 매달린 광대’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로부터 부당하게 내몰리는 희생양, 즉 마녀사냥의 희생자를 연상시킵니다. 이적은 이 곡을 만들며 조세희 작가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을 떠올렸다고 밝혔으며, 이는 곡에 담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극적 시선을 더욱 명확하게 해줍니다.

6.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앨범의 주제 의식을 우화적으로 응축한, 한 편의 잔혹 동화와 같은 대곡입니다. 이 곡은 억울하게 죽은 어릿광대(Interlude)의 세 아들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마을에 복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의사가 되어 환자들에게 ‘웃음’으로 고통을 주고, 둘째는 장군이 되어 ‘춤’으로 죽음을 선사하며, 셋째는 가수가 되어 ‘울음’으로 사람들의 귀를 멀게 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웃음, 춤, 눈물로 되갚는 이 기괴한 복수극은 “세상의 어떠한 서러운 죽음도 그냥 잊히진 않네"라는 마지막 가사를 통해 잊혀진 죽음과 억압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던집니다. 음악적으로는 경쾌한 현악 4중주와 왈츠 리듬으로 시작하여 클래식과 국악기인 꽹과리를 결합하는 파격적인 편성을 보여주며, 곡 중간에는 8분의 6박자 스윙으로 전환하는 등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선보입니다. 이처럼 몽환적인 가사와 실험적인 사운드가 완벽하게 결합된 이 곡은 앨범 최고의 트랙으로 자주 꼽힙니다.

7. 벌레#

앨범 발매 당시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문제작이자, 앨범의 분노를 가장 날것 그대로 표출한 트랙입니다. 이 곡은 멜로디 없이 오직 김진표의 격렬한 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제목 ‘벌레’는 학생들에게 폭력을 일삼고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는 부조리한 교사들을 향한 직설적인 은유입니다. 가사는 “세게 때려놓고 살짝 쪼개는 당신은 미친”, “엿이나 처먹으라지” 등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적나라한 표현으로 가득 차 있으며, 권위적인 교육 현실과 억압적인 학교 문화에 대한 정면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이 파격적인 내용으로 인해 이 곡은 심의에서 가사 전체가 삭제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으며, 방송 불가 판정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김진표 스스로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을 만큼, 그의 분노 어린 래핑과 이적이 효과음처럼 삽입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90년대 교육계의 어두운 단면을 고발하는 강력한 선언문 같은 곡입니다.

8. 불면증#

11분 58초라는 압도적인 길이의 트랙으로, 앨범의 실험 정신이 정점에 달한 곡입니다. 이 노래는 불면증에 걸린 사람이 잠들기 위해 사투를 벌이다가 점차 의식이 흐려지며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마침내 지쳐 쓰러지는 과정을 시간의 순서대로 묘사한 한 편의 음향 서사시입니다. 곡의 전반부는 비교적 대중적인 멜로디 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이 곡의 진정한 정체성은 밴드 삐삐밴드의 보컬 이윤정이 참여한 후반부의 약 7분간의 즉흥적인 샤우팅과 괴성에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단 한 번의 라이브 테이크로 녹음되었으며, 이적과 이윤정이 주고받는 날카로운 비명과 혼돈의 사운드는 잠들지 못하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극도의 불안감과 정신적 붕괴를 청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냈습니다. 대중음악의 문법을 완전히 파괴한 이 파격적인 구성은, 평범한 수록곡이 될 수도 있었던 노래에 영원한 생명력을 불어넣은, 앨범에서 가장 난해하고도 위대한 순간으로 기록됩니다.

9. Mama#

이 곡은 자식의 삶을 통제하려는 부모의 억압적인 사랑과 욕심에 대한 격렬한 저항과 분노를 담고 있습니다. 김진표가 랩으로 절규에 가까운 아들의 입장을 토해내고, 이적이 코러스 파트에서 “Mama, oh mama, 날 좀 제발 가두지 마"라며 애절하게 노래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사는 “잘 키웠단 소릴 듣기 위해 날 이렇게 키우는 거니”, “받아먹기만 하는 나는 개가 아니잖아” 등 부모의 허영심과 일방적인 기대를 향한 직설적인 비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처럼 자식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교육 현실을 고발하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인해, “벌레"와 마찬가지로 이 곡 역시 심의에서 가사 전체가 삭제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10. 사진 (Outro)#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에필로그 형식의 짧은 피아노 발라드입니다. 앨범 내내 휘몰아치던 분노와 광기가 모두 지나간 뒤, “강(江)“과 함께 가장 차분하고 서정적인 순간을 선사합니다. 가사는 “멀리 쓰러져가는 기억 속에서 먼지 낀 너를 보고파"라는 구절처럼, 빛바랜 사진 속 과거의 연인을 향한 아련한 그리움을 노래합니다. 짧은 구성이지만, 모든 것을 쏟아낸 뒤의 공허함과 쓸쓸함을 담은 이적의 호소력 짙은 보컬이 깊은 여운을 남기며, 격렬했던 앨범의 여정을 차분하게 마무리 짓습니다.

앨범에 대한 헌사#

  • 음악평론가 강헌은 이 앨범을 “90년대라는 세기말적 공간에 만개한 가장 기괴하고 아름다운 독초"라고 표현하며, “아이돌 그룹의 댄스 뮤직과 기획된 발라드가 범람하던 시절, 자신들의 문법으로 정면 돌파한 용기 있는 앨범"이라고 평가했습니다.
  • 2007년 경향신문과 웹진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에서 22위에 선정되었으며, 선정단은 “분노와 냉소, 절망과 연민 등 음울한 감정들을 다채로운 음악적 스펙트럼 안에 녹여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걸작"이라고 평했습니다.
  • 음악평론가 배순탁은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문제적인 앨범 중 하나"라며, “이 앨범이 없었다면 2000년대 이후 한국 인디 씬의 다양한 음악적 시도들 중 상당수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그 영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References#